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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n 24. 2024

이탈리아인 구역에서

2024.6.24.


아침이 밝았다.

R이 눈을 뜨니 연회색 천장이

손에 닿을 거리에 있었다.

아주 짧은 망설임이 스치고

지금 이곳을 알아차렸다.

여긴 게스트하우스 301호 2층 침대야.

아래 침대에서 인기척이 바스락거렸다.

G도 일어났나 보다.

두 사람은 2주 동안 함께 유럽여행 중이다.

어제 다녀온 트레비분수 야경이

물줄기처럼 기억 속에 떠올랐다.

일정의 절반인 7일은

이탈리아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중 3일은 로마에 머무르는데

오늘이 두 번째 날이었다.


"잘 잤어?"

"응, 어제 밤늦도록 다녀서 좀 피곤했는데

  자고 나니 괜찮네. 너는?"

"그래, 나도 잘 잤어.

  일어나서 아침 먹고 나갈까?"

"그래."


R은 이불을 개고 침대 앞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아침 이부자리 정리가

삶의 기본 태도라고 누군가 말했지.

아직 몽롱해서 답이 선뜻 안 떠오르네.

아무렴. 일단 밥을 먹자. 가글 좀 하고.


두 사람은 옹기종기

개미집 같은 방들을 지나

둘이 앉으면 꽉 차는 복도 끝 부엌에 다다랐다.

우산을 닮은 갓등 아래

낡은 주백색이 공간을 채웠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딱 은은한 느낌이 지금 기분과 비슷하네.

R은 어제 숙소 앞 작은 마트에서 사둔

식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미리 손질하길 잘한 것 같아.

슬라이스 치즈처럼 얇게 썬 토마토,

그보다 조금 더 두꺼운 치즈,

포도주로 빚은 것 같은 포도를 꺼냈다.

G는 싱크대 옆 선반에 올려둔 식빵 봉지를 열고

빵 한쪽 면에 버터를 얇게 펴 바르기 시작했다.

매끈한 코팅을 마치고 달걀프라이 2개를

피자 반죽처럼 지져냈다.

순식간에 그럴듯한 샌드위치가 생겼다.

두 사람은 우유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 포도까지 꼼꼼히 챙겨 먹은 다음

방으로 돌아왔다.

재빨리 씻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또 어떤 풍경을 마주할까.

어떤 추억을 쌓을까, 기대된다.


옷장 같은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오래된 외국 대학교 기숙사 문 같은

입구를 지났다.

꽃이 듬성한 작은 정원을 지나

큰 녹색 철제 대문을 열고 나왔다.

벌써 밖은 환하다.

6월의 로마 햇살은 참 밝다.

어제 한 번 다녀본 길이라 낯설지 않네.

높지 않은 주택가를 지나

멀리 콜로세움이 보이는 공원길을 걸었다.

지역주민 약간, 관광객 조금 눈에 띈다.

출근길처럼 익숙하네.

강렬했던 첫인상은 자연스럽게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제보다 사진이 더 잘 나올 것 같아.

두 사람은 이탈리아인 구역에서,

세계인의 광장에서 서성거렸다.


이탈리아인 구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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