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James Jun 25. 2024

'내가 죽을 때 무엇이 나와 함께 죽을까'

2024.6.25.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때때로 마주하는 생명의 떠남이 있다.

계절을 떠난 시든 꽃,

움직임 없는 곤충,

납작하게 말라버린 지렁이,

애틋하게 물든 낙엽은

우리를 산책길로부터

'살아있음'과 '죽음'의 의미

한가운데로 잠시나마 옮겨놓는다.


사람의 죽음은 어떤가.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아픔과 슬픔은

글과 말로 다할 수 없다.

어제처럼 오늘도 변함없을 것 같던

막연한 바람은 잿빛 먼지가 되어

먼 하늘로 흩날려 버린다.

고요한 레퀴엠 속 별 한 점 없는

밤의 무도회처럼 무심한 몸짓은

비애를 더한다.

세월이 흘러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진한 그리움으로 뭉쳐 가슴 바닥에

켜켜이 쌓인다.

그리고 어느 날 지하수처럼 보이지 않던

마음이 위로 솟구쳐 일상을 적시곤 한다.

멈춰있던 기억이 바퀴처럼 돌며

그동안 잊고 지낸 과거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다시 떠나간다.


공기처럼 보이지 않아도

바람처럼 불어오는

매일매일의 모든 만남과 헤어짐.

산다는 것은 수많은 태어남과 죽음을

자신의 태어남과 죽음 속에 품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품은 자궁처럼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불멸의 필연이다.

닫힌 세계가 품은 열린 시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우리는 하루를, 오늘을 살아간다.


누구나 언젠가는 생의 마지막 걸음을

떼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죽을 때 무엇이 나와 함께 죽을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오늘 글의 주제문을 가져왔다.

죽음이 왔을 때 죽지 않는 건 뭘까.

그 무엇은 나의 무엇일까.

내가 알 수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영육을 돌보는 삶 속에서

우리가 잊지 않고

잃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평화로운 기다림으로 가득한 인생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숨이 다하는 날

내가 가져가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남겨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살면서 꿈꾸고 바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간절한 마음을 비웃듯

고통과 허무가 생활을 때리고

뒤흔들어 버릴 때도 있다.

마음의 준비는 안 되었지만

파도처럼 밀려드는 상황에

조각 난 나무토막처럼

떠밀려 갈 때도 있다.

하지만

삶의 틈새마다, 모서리마다

감사함을 담은 사랑을

소중한 사람에게 표현한다면,

너무 늦지 않고 너무 작지 않게

마음을 나누고 보탠다면

내가 죽을 때 나와 함께 사라질

것들에 대한 미련과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언젠가 닥칠 죽음 앞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선물처럼 소중한 하루'라는 말을

새삼스레 새기는 요즘이다.

해 질 녘 산들바람을 느끼며

생의 마지막 호흡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기를,

감사와 사랑을 담아

소망한다.


내가 죽을 때 무엇이 나와 함께 죽을까


이전 17화 이탈리아인 구역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