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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Aug 05. 2024

그것은 가족 이야기였다

2024.8.5.


새벽 속에 잠든 세상.

희미한 별이 반짝이고 바람은 선선하다.

J는 방금 집을 나섰다.

요즘 잠 못 이루는 날이 잦아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잠들었다 도중에 깨는 때가 많아졌다.

항상 비슷한 시간, 오전 3시경에 눈을 떴다.

꿈을 꾸기도 했는데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집 앞 공원 옆 가로수길을 걸으며

올려다본 밤하늘, 아득한 별 무리처럼

조그만 기억들이었다.

제대로 떠오르진 않아도 어렴풋이 알 듯 말 듯

그런 꿈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한 바퀴 돌고 들어가야지.

J는 사흘 전처럼 같은 새벽길을

찬찬히 내디뎠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맞이하는 이 시간의 이 길,

꿈같은 신세계로부터 나와

구름 같은 발길을 헤치다

다시 잠자리로 돌아가는 일,

꿈과 이어져 옛 추억의 바다에

발을 담그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가족 이야기였다.

걷다 보니 꿈이 한 겹 선명해졌다.

J는 5남매의 맏이였다.

평생 세입자였던 부모와 어린 동생들,

아직 도시가 갖춰지지 않은

수도권 외곽에서 매년 위층 아래층으로,

그리고 점점 밖으로 옮겨야 했던 작은 거처.

민들레 씨앗처럼 방안을 떠다니던 불화와

먹물처럼 번지던 불안.

끝내 떠나버린 부친과

우울증에 빠져버린 모친.

꿈 많던 J는 중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생업에 내던져졌다.

원래 책임감이 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은 거북이 등딱지를 닮아가고

감정은 몽당연필보다 더 닳았다.

안 해 본 일이 있을까.

부당함이 일상이던 현장,

죽을 만큼 맞고 나온 조직,

한여름 폭염보다 뜨겁던 나이트클럽.

슬픔이 끓어오르면

눈물이 다 말라 버린다는 걸

한 끼 계란을 삶다가 알았다.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니다.

희생을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동생들은 그럭저럭 살고 있다.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있다.

조카들은 참 귀엽다.

이젠 다들 뿔뿔이 흩어져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그래, 다들 살기 바쁠 테야.

쉽지 않은 세상,

제 몸, 제 식구 건사도 힘들겠지.


공원 모서리를 돌아 다시 돌아오는 길,

보도블록 사이 풀이 몇 잎 돋아나 있네.

가로등에 빛나는 잎새.

어떤 건 작은 꽃도 피었다.

J는 쪼그려 앉았다.

아고, 무릎이 예전 같지 않네.

아, 이제 알겠다. 꿈.

소중하게 반짝이던 아름다움을

꿈꾸던 꿈, 그 꿈 말이다.

J는 벅차고 슬퍼졌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바람 속 바람 같았던,

그래, 그건 가족 이야기였다.


그것은 가족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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