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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Aug 06. 2024

꼭대기에서 바라본 전망

2024.8.6.


아, 그리고 와!

숨이 차오르며 감탄이 튀어나왔다.

탁 트인 풍경,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없는 지평선이 푸르게 내려앉았다.

애수에 젖은 듯한 질감,

날이 흐려서 그럴까.

멀리 넘실대는 검푸른 바다가

손 끝에 묻어날 것 같다.

팔을 뻗어 손을 흔들어 보았다.

오름 정상에는 작은 평지가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사진 찍기 바쁜 곳.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까.

S는 어색한 미소 담은 셀카 하나 남겼다.


주차장부터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에

혹시 몰라 우비를 입었는데 잘했다.

보슬비가 점점 짙어지네.

흰 비닐옷 겉에는 땀이, 속에는 빗물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무렴 어때.

바람이 시원해서 다행이야.

촉촉한 운동화 걸음이 축 늘어졌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방향은 모르겠지만

아마 동쪽과 북쪽 어디 사이,

큰 숲이 풍성했다. 저 위에 드러누우면

너무나 푹신할 듯한 초록 매트가 아른거린다.

숲과 숲 사이, 들판과 들판 사이는

짙고 옅은 황톳빛 조각들이 오밀조밀하네.

어떤 건 땅이고 또 어떤 건

억새냐 갈대냐 뭐 그런 친구들이 아닐까.

하늘에는 구름다운 구름 대신

회색빛 희뿌연 드로잉이 가득했지만

그 모습대로 운치 있었다.

빗물의 향기에 스민 대지의 체취가

코끝을 쏙쏙 파고들었다.

땅도 땀을 흘릴까.

흙내음에 뒤섞인 풀내음이 아찔하네.

맞은편에는 완만한 구릉지가

굽이치며 흘러간다.

썰매 타고 내려가면 금방일 것 같다.


이제는 한 걸음 내려가는 길, 가보자.

두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길이

둘레둘레 굽이치며 몸을 떨었다.

발을 내딛기 전 고개를 들어

사방을 천천히 다시 둘러보았다.

눈에 담기는 경치만큼

가슴이 활짝 열리는 기분, 유쾌하다.

저기 저 끝에 숙소가 있는 것 같아.

여기서 보니 정말 멀다.

문득 그리워졌다.

공간을 가로질러온

시간 그 끝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처럼 길 따라 내려가지 않고

뒤돌아섰다면, 그리고 다시

다가갔다면 달라졌을까.

그랬겠지.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갈 길로 나아가야 할 수도 있어.

그때처럼 지금, 앞으로 난 길로

걸었다. 걸어왔던 길로 가지 못했다.

여기는 오름 정상 입구와 출구길이

서로 다르다. 그때는 아니었는데.

다시 너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뒤돌아보지 못했다.

끝내 앞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얼굴이 젖어버린 지금처럼.


꼭대기에서 바라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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