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7.
그녀는 말이 없었다.
하얀 단상 위에 가지런히 누웠는데
침대라고 해야 할까, 매트리스 없는
딱딱한 구조물은 얼룩이나 먼지 하나 없는
단아함을 담았다. 그녀도 그렇다.
지금처럼 그리고 지금껏 그랬으니까.
단점 없고 실수 없는 삶이란 없지.
그녀도 그랬을 테야.
영화에는 러닝 타임이 있다.
영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되는 시간.
영화를 보기 전 이를 확인했더라도
감상 중에는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특히 내용에 푹 빠져 있다면.
그래서 마지막에는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
화면 어딘가에 남은 시간이
계속 표시되면 몰입감이 떨어질 것 같아.
만약 내용의 결말을 알고 있다면,
슬픔이 올 거란 걸 예상한다면,
거기에 잔여 시간까지 나오면
마음은 좀 괜찮을까, 아닐까.
그녀의 기억,
지나간 현재에 있던 그녀가
지나가버린 과거 속 그를 떠올리며
덧붙이고 어루만진 마음의 조각보다.
이제는 의식이 닿을 수 없는
멀고 먼 굽잇길로 나풀거리네.
사람은 시간 간격이 벌어질수록
감정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될까.
정확한 판단과 올바른 행동을 할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세월이 흘러도 감성이 덧칠해지고
마음은 두터워지기도 하니까.
다만 그 색감은 좀 옅어질 수 있지.
유화보다는 수채화에 가까운 촉감이랄까.
때로는 캔버스가 보일 정도로
투명한 색칠도 있지만
그래도 거긴 빈 곳이 아니라
물감으로 채운 곳이지.
그녀의 삶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잘 살았을까.
어떻게 살아왔다고 말해야 할까.
한때는 분명했던 외곽선이 흐릿해졌다.
낮에는 정작 빛의 밝기를 의식하지 않다가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올 때
햇살의 존재를 깨닫기도 한다.
내가 그녀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두 지켜보았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단지 고맙다, 미안하다고 하면 될까.
한두 마디로 나타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가져간 것과 남겨진 것,
이룬 것과 이룰 일들이
세월의 바다 위에 빙하처럼 떠다닌다.
그 가운데 하나를 붙잡고
차디찬 얼음 조각 위에 발을 내디뎌본다.
서글픈 알싸함이 다리를 타고
가슴을 지나 머리에 닿았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