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6.
S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반쯤 온 건가.
시작이 반이라는데 아까 출발해서
반 왔으니 반과 반 더해서 다 이룬 건가.
실없는 웃음이 났다. 아직은 멀었지.
이제 오르막길을 조금만 더 가면 돼.
운동장을 오른쪽에 끼고 5분쯤 걸은 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야지.
단과대학을 마주 보며 비탈길을 오르다가
다시 좌측길로 걸음을 3분쯤 더 보태면
언덕 위의 하얀 건물에 도착한다.
캠퍼스에서 가장 높은 곳, 중앙도서관이다.
S는 여기가 좋았다. 수업이 있든 없든
학교 셔틀버스 첫 차를 타고 내려
도서관을 찾았다.
다리가 불편한 느린 걸음이었지만 괜찮아,
S는 매일 출석하듯 언덕길을 올랐다.
숱 많은 가로수가 보도 양옆에 빼곡했다.
계절 따라 다채로운 인사로 S를 응원했다.
지난가을, 가로등 발치에서 주워 올린 낙엽 한 장.
주백색 조명 아래 손바닥을 닮은 작은 잎사귀.
새빨갛지 않고 발그레 물든 게 아직
덜 익은 내 모습 같아 보였어.
S는 버리지 못하고 책 사이에 끼워두었다.
잘 말려 코팅해 책갈피로 쓰고 있지.
아, 이제 들어가 볼까.
S는 도서관 입구 문을 열었다.
익숙한 걸음으로 정기간행물실에 들렀다.
첫 번째 테이블에 옷과 가방을 올려두고
신문과 잡지 몇 부를 가져왔다.
내용을 쓱 훑어보고 제자리에 둔 뒤
짐을 챙겨 대출실로 향했다.
출입구 맞은편 햇살이 내리는 창가 좌석은
S가 제일 선호하는 자리다.
짐을 두고 이제 움직여볼까.
24시간 개방하는 4층 열람실도 괜찮지만
책장 사이를 거닐며 그 속에서
책을 둘러보고 읽어보는 게 좋았다.
S는 도서관 중에서도 이곳이 편안했다.
자신만의 케렌시아(Querencia)라고 할까.
투우장의 피 흘리는 소가 잠시 숨을 고르며 쉬는 곳,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라고 한다.
흐뭇한 책내음이 견과류 향보다 더 구수해.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을 보면
믿음과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눈길 닿는 책을 빼 페이지를 넘겨보고
마음 닿는 글귀에 집중해 본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 달린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이 하늘에 달린 것처럼
열렬하게 기도하라.
그래, 지금을 미워하지 않고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보련다.
S는 오늘도 작은 힘을 키웠다.
한동안 꺾여있던 날개를 펴는 장소,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