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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an 15. 2024

'램프와 촛불의 빛'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에서)

2024.1.15.


"앗!"

"어..."

동시에 울려 퍼진 다른 두 소리.

불이 꺼졌다. Y와 H 두 사람이 있는 거실도,

안방과 부엌도 암흑에 휩싸였다.

차단기가 내려갔나. 

H는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현관 두꺼비집을 살펴보았다.

"누전은 아닌가 봐."

"정전인가 보네."

Y는 거실 창가에 드리운 커튼을 젖혔다.

이럴 수가. 맞은편 단지들도 모두

어두운 침묵 속에서 헤매고 있군.

잠시 뒤 층층마다 흰 불빛이

피어올라 두리번거렸다. 

역시 플래시를 켠 모양이다.

무언가 연대가 이루어진 기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정전인가 봐."

"그러게, 참 오랜만이다."

"빨리 전기가 들어와야 할 텐데.

 아직 빨래가 탈수 중이라..."

"이런, 냉장고도 멈췄잖아. 소독기도."

"우리 어릴 때는 종종 정전되면

 촛불을 켜두었는데 말이야."

"맞아, 낭만이 있었지."

Y는 한 손에 스마트폰 플래시를 들고

거실서랍을 비추며 무언가 찾았다. 

"여기 작은 초를 하나 두었던 것 같은데."

"저번에 케이크에 쓰려다 남은 거?"

"그것도 있긴 한데 그거보다 더 

 큰 게 있었어. 아, 여기 있다."

Y의 손에 검지 굵기의 연분홍빛 초가 있었다.

"추억 돋네. 우리 연애하고 처음 갔던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 산 거잖아."

"맞아, 혹시나 해서 봤는데 잘 있었군."

가녀린 촛불이 불을 밝혔다.

온기 어린 전구색 빛이 거실을 감싸 돌았다.

전구보다 촛불이 먼저 생겼을 테니

촛불색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네.


"J가 튀르키예 여행 가서 사준 

 스테인드글라스 램프도 같이 켜두면 좋을 텐데."

"그러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전기가 나갔으니..."

"촛불만으로는 조금 어두운 것 같아."

H는 스마트폰 플래시를 위로 향하게 두고

그 위에 식탁 물병을 올려놓았다.

램프처럼 빛이 났다. 

냉장고에서 초록색 병을 꺼내 올려두니

신비한 빛깔이 감돌았다. 오로라를 닮았네.

마치 캠핑을 온 듯, 거실은 순식간에

낭만 가득한 초원의 텐트가 되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밤하늘 은하수.

끝없는 대지 위로 몽글거리는 설렘이

물안개처럼 깔리던 나날.

경이로운 중앙아시아의 대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거닐던 우리.


"기억나? 10년 전 우리 처음 만난 날."

"그럼, 해외봉사에서 서로 처음 봤잖아."

"맞아, K 씨가 당신에게 봉사활동 같이 가자고 권했잖아. 

나한테도 이번 봉사가 새롭게 시작하는 지역이고 

또 의미가 있는 곳이라 동참하자고 했었거든." 

"그래,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인연이야." 

"세 명 중 한 명이라도 여건이 안되었다면 

우리가 이어질 수 없었을 거야." 

"그러게,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지."


반짝! 다시 불이 들어왔다. 

잠깐의 추억 여행, 좋았다. 

가끔은 이렇게 지난날을 

돌아볼 시간이 찾아와도 나쁘지 않을 듯.

아, 세탁기부터 봐야겠다. 촛불도 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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