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7.
W는 눈을 떴다.
옅은 청록색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
민트향을 품은 듯한 색감의 공간 속에
철제 2층 침대가 삐그덕거렸다.
아무래도 1층이 편하단 말이지.
W는 하품을 머금고 기지개를 켰다.
점심시간 전까지 M이 밀라노에서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동안 산책을 좀 해볼까.
빈 침대 2층을 살피던 W는
공공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어제 사둔 햄과 치즈를 꺼내고
우유도 한 잔 따라놓았다.
냉기를 좀 빼야겠어.
W는 화장실에 다녀와 스크램블을 만들고
잼을 곁들인 토스트도 두 개 구웠다.
그럴싸한데. 이만하면 괜찮을 듯하다.
W는 사과를 한 입 깨물고
쟁반에 아침거리를 담아 거실로 갔다.
아라베스크 무늬가 인상적인
아치형 창문이 비스듬한 아침 햇살에
뽀얗게 달아올랐다.
창문을 좀 열어볼까.
뻐근한 창틀이 낑낑대며
머리에 이고 있던 양 날개를
밖으로 펼쳐냈다.
습기 어린 바람이 산들거렸다.
어제저녁 늦게 숙소에 와서
이곳에서 맞는 첫 아침.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것,
좌우로 길게 가로지르는 풀빛 물결이
봄바람처럼 너울거렸다.
이태리 장인이 만든 스팽글일까,
수면이 흰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그 위로 작은 배들이 총총거렸다.
차 대신 배가 다니는 물의 도시,
아직 곤돌라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한번 타볼 수도 있는데
M은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야.
뭐 그렇다면야.
아무튼 W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여행책과 물병을 담은 백팩이 소곤거렸다.
어디로 갈까. W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광장은 이따 M과 같이 가보기로 했으니
동네 나들이를 좀 다녀볼까나.
W는 숙소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이쪽이 좀 더 마음에 끌렸다.
태양을 등지고 걸으니 눈이 덜 부시네.
거실에서 보던 풍경 속으로 들어오니
익숙한 낯섦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로의 어깨를 가까이 붙여
맞은편을 바라보는 집들이
마치 조립식 장난감 같다.
운하를 따라 척추뼈처럼 길게 늘어선
주택들을 구경하다가 다리를 건넜다.
단단한 돌로 덮인 보도를 따라
더 작은 샛길들이 모세혈관처럼
깊숙이 이어지면서 이색적인
골목 풍경을 빚어냈다.
꼭 유명한 곳, 관광 명소가 아니라도
이렇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길을 거니는 것도 좋아.
박제된 기시감이 아니라
생생한 기대감이 느껴지니까.
W는 막다른 곳에 닿으면
다시 돌아오고 곳곳을
휘둘러보다가
큰길로 나왔다.
어느덧 해가
베네치아 중천에 걸리고 있네.
M을 만나러 가야겠다.
W는 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