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James Jan 19. 2024

그녀의 머리칼은 붉은색이었다

2024.1.19.


"안녕, 얘, 그런데 너는 머리가 빨갛네. 염색한 거야?"

"아니, 난 원래 머리가 빨간색이야."

"아, 정말? 신기하다."

그녀의 머리칼은 붉은색이었다. 

새 학기의 시작은 그녀에게 달갑지 않았다.

매년 반복되는 질문과 정해진 답변.

검은 머리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빨간 머리는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물어보는 건 그나마 괜찮았다.

놀리려는 녀석들도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 단순한 호기심 수준이었으니까.

선생님들도 궁금해했는데

일부는 그녀가 염색한 걸로 오해했다.

거기까지였다면 다행일 텐데

또 몇몇은 멋대로 지껄이기까지 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익숙한 일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이제 갓 10살을 넘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이때쯤 <빨강머리 앤>은 인기 많은 만화였다.

웬만한 아이들은 다 봤다.

이런 건 여자애들이나 보는 거라던 남자애들도

결국 TV 앞에 앉게 만들었다.

빨간 머리인지 빨강머리인지 헷갈렸는데

제목은 빨강머리 앤이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별명도 '앤'이 되었다.

애니메이션의 앤은 끝에 'e'가 있는 'ANNE',

그녀는 끝자리 이니셜을 따 'ANNH'였다.

그녀 이름 마지막 글자가 'ㅎ'으로 시작해서

누군가 붙여준 별칭인데 그녀는 나쁘지 않은 듯,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H가 있으니 뭔가 단단해 보이고

모양도 뭔가 있어 보인다고 했지.

빨강머리 앤처럼 그녀도 씩씩해 보였다.

주근깨는 없었고 빼빼 마르지도 않았지만

남들과 다름없이 학교 생활을 잘해나갔다.

그는 그녀가 잘 지내길 속으로 응원했다.


타고난 머릿결이 붉다면 그녀 부모님도 그럴까.

그녀가 커서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도 머리가 붉은색일까.

그는 궁금했는데 물어보지는 못했다.

혹시 쓸데없는 호기심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기에.

그는 그런 생각도 했다. 

그녀가 지금은 아직 어리지만

성인이 되면 참 멋질 것 같다고.

남들은 일부러 약품을 써야 하는데

그녀는 그럴 필요 없이 생생한 자연 컬러로

한껏 멋을 부릴 수 있을 테니까.

참 매력적이겠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해 학급 문고를

차례로 읽어나갔다. 

그중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셜록홈스 시리즈가 있었는데 

<빨간 머리 연맹>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걸 읽으며 그녀도 아마 추리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이 연맹이 가입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하지만 악당에게 속지는 않을 거야. 그럼 그럼.

아무튼 학년이 바뀌고 그녀는 다른 반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반으로 다시 만난 적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동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아이를 

잘 챙기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 애는

머리가 붉은색이었나 검은색이었나

잘 생각이 안 난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세상의 편견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한 자신으로 잘 살기를,

떠오르는 새해 일출처럼

밝게 빛나길 바라본다.

이전 09화 곁눈질에 대해 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