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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09. 2022

한국형 패스트푸드 - 휴일 떡만둣국

비오는 날 간단 점심으로 딱 좋은

 하루살이 워킹맘의 저녁을 구원하는 쌍두마차가 있다. 퇴근하자마자 있는 재료로 휘리릭 저녁밥상을 차릴 수 있는 메뉴, 바로 볶음밥과 떡만둣국이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썰고 햄이나 스팸, 베이컨, 소세지, 참치 등 집에 있는 가공식품 아무거나 넣고 볶아 김가루만 뿌려주면 완성이다. 조금 더 부지런한 엄마라면 김치 대신 냉장고 안에서 시들어가는 야채를 다져 넣은 야채볶음밥도 있다. 이도저도 안되면 냉동볶음밥을 꺼내 후라이팬에 볶기만 해도 된다. 여기에 달걀후라이까지 얹어주면 모양도 예쁘고 여러모로 탄단지가 갖춰진 한끼 식사가 완성된다.      

쌍두마차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떡만둣국이다. 거창하게 육수를 낼 필요도 없다. 비비*, 물무*, 동*, 오*기 등에서 나오는 사골육수 한 팩 붓고 물 조금 더 넣어준 후 떡국떡과 냉동만두를 넣어 끓이기만 하면 뚝딱이다. 여기에 김치만 하나 곁들여줘도 불만 없는 밥상이 만들어진다. 국이 아니고 만둣국인 이유는, 탄수화물만 먹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채소와 고기가 들어간 만두를 함께 먹이는 편이 훨씬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볶음밥과 만둣국은 짧은 요리시간, 맛과 영향의 균형 면에서 훌륭한 한국형 패스트푸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어릴 때 만두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주로 설에, 간만에 모인 친척들이 함께 모여 만두를 빚었다. 그렇게 밎어둔 만두로 떡국에 같이 넣어 끓여먹고, 쪄먹고, 구워먹었다. 커다란 밀대로 반죽을 밀고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만두피를 잘라내서 만둣속을 넣고 빚었다. 모여앉은 며느리들마다 만두의 모양이 달랐고, 그 중 가장 예쁜 만두는 큰엄마의 만두였다. 큰엄마 옆에서 동그랗게 양끝을 말아 만드는 예쁜 만두를 만들어 보려고 애쓰다 음식 망친다고 쫒겨난 적도 있었다. 다 만든 만두를 커다란 들통에 넣고 끓여내서 설날 아침 다같이 모여 먹었다. 그때마다 나는 떡은 안 먹고 만두만 골라먹어서 혼났고, 동생은 반대로 떡만 골라먹고 만두는 남겨서 혼났다. 둘이 눈치껏 바꿔먹었으면 됐을텐데, 그걸 못해서 혼났던 걸 보면 동생이나 나나 맹추였던 것 같다. 만두는 그렇게 먹고도 남으면 귀경하는 자손들 양 손에 가득가득 담아주던 음식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이후 만두를 빚어본 건 결혼하고 나서였다. 마트에 가면 산처럼 쌓여있는 게 냉동만두건만, 시어머니는 꼭 손만두를 고집하셨다. 명절뿐만 아니라 생신 때도 만두 빚는 걸 좋아하셔서 남자들은 만두피를 반죽하고 여자들은 속재료를 손질하는 게 일상이었다. 늘 같은 재료와 같은 방식으로 만드시는 데다 대야와 찜기 등 도구들도 늘 같은 자리에 구비되어 있어 꼭 공장 돌아가듯이 만두를 만들곤 했다. 그렇게 빚은 만두는 쪄낸 다음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 보관해둔다. 만두를 다 먹어갈 때쯤 되면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명절이 다가와서 일 년 내내 냉동실에 만두가 어지질 않았다.


친정엄마는 만두피는 시판제품을 구입하고 속만 만들어서 조금씩 빚으신다. 만들 때마다 만두속재료가 달라져서 그때그때 다른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날은 집에 표고버섯이 선물로 들어와서 버섯을 다져넣고 만두를 찌시고, 어느 날은 묵은지가 많아 김치를 잔뜪 넣고 빚으시고, 어느 날은 부추가 없어 파와 양파를 넣고 하시는 식이었다. 그래서 엄마 만두는 특정한 맛이 없다. 그저 엄마가 만든 송편같이 길쭉한 만두 모양으로 기억날 뿐이다.     


나는 만두란 사먹는 음식이지 집에서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장볼 때 마다 꼭 사서 냉동실에 쟁여둔다.아이들 간식으로도 잘 먹는다. 꼬마물만두를 에어후라이기에 돌려 튀긴만두처럼 하거나 끓는 물에 데쳐 참기름 뿌려줘도 맛나게 먹는다. 다시 한 번 비비*와 오*기와 풀*원에 감사인사를 전한다.     




오늘처럼 비오는 휴일 점심으로 칼칼한 라면 말고 따스한 무언가가 먹고 싶을 때, 사골국물 한 팩 털어넣고 냉동실에서 떡국떡과 만두를 꺼낸다. 팔팔 끓인 국물에 떡과 만두가 동동 떠오르면 ‘파송송 계란탁’도 귀찮으니 후추 한 줌 톡 치고 끝낸다. 그렇게 두 아들과 뚝딱 한 그릇 먹고 나니 쌀쌀한 날씨를 이겨낼 온기가 속에서부터 차오른다. 점심은 동그랗고 따스한 떡만둣국으로 잘 먹었으니, 저녁은 달걀후라이 예쁘게 올린 김치스팸볶음밥을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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