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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29. 2022

과메기 한 상 보냅니다

생일 케이크 보다 과메기

일 년에 한 번, 매년 11월이 되면 과메기를 사다먹습니다. 친정식구들 모두 과메기를 좋아해서, 친정으로도 한 상자, 동생네한테도 한 상자, 우리 집으로 나 먹을 것 한 상자, 총 3세트를 각각 주문합니다. 혹시 바빠서 과메기 주문을 놓치면 친정아버지가 전화를 하십니다. 올해는 과메기를 아직 못 먹어봤구나, 하시면서요.   

   

올해도 과메기철이 돌아옵니다. 빠른 곳은 벌써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따로 단골집이 있는 건 아니고, 매년 커유니티에 올라오는 여러 제철 과메기 글을 비교해보고 골라서 사먹습니다. 더 먹고 싶을 때는 생협 과메기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과메기라고 써놓고 보니 벌써 호불호가 갈릴 듯 하군요. 비린 맛을 싫어하는 남편은 제가 과메기 먹을 땐 옆에 앉지도 않습니다. 덕분에 저 혼자서 푸짐하게 과메기를 며칠을 두고 즐길 수 있으니 안 먹는 남편이 고맙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친정으로 잔뜩 보내고 동생하고 같이 가서 부모님하고 우리 자매하고 넷이서만 먹을 적도 있군요.     


과메기 얘기를 하다 보니 얼른 먹고 싶어 입에 침이 고입니다. 끓어오르는 이 격정, 삭여야합니다. 애초에 과메기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거든요.     



어제 퇴근길에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조카 독감 주사도 맞는다 하고 자신도 병원 들러야 한다고 그 전날 통화를 했던 터라 병원 잘 다녀왔는지 연락했죠. 병원 잘 다녀오라고, 간단히 통화를 끝내고 났는데, 조금 뒤 동생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받았습니다.     

“나 이제 언니하고 안 놀아. 동네친구들하고만 놀거야. 난 언니가 없어.”     

심통이 가득 난 동생 목소리에 가만 생각해보니, 아차, 오늘이 바로 제 동생 생일입니다!      


정말 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당일이 되어 까먹어버리는 기막힌 일이 벌어져버렸지 뭡니까. 큰일입니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여러 가지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 동생이라서 동네 친구들하고만 놀지 말고 언니도 챙기라고 치대곤 했는데, 그야말로 제 약점을 제대로 후벼 팝니다. 이제 안 놀아주겠답니다. 나는 친구도 없는데. 그야말로 비상사태입니다.       


저는 동생과의 관계에 있어 ‘언제나’, ‘철저하게’, ‘절대적으로’ ‘을’이라서 이런 경우는 쿨하게  대처할 수 없습니다. 바로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아, 제가 세 살 더 많은 건 비밀도 아닙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애교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고 진심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동생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 인스타에 급히 피드를 하나 올립니다. 답글이 달립니다. 그것도 두 개나.

“떠난 기차는 후진하지 않는다.”

“이미 늦었어.”

그녀답습니다.     

 

이제 남은 건 형부와 조카 찬스입니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처제한테 전화 한 통화만 해달라고 조릅니다. 안 받습디다. 두 아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시킵니다. 받긴 받는데, 스피커폰으로 멀리서 목소리만 들려줍니다.     

“응, 윤아, 나는 조카는 있는데 언니는 없어.”

단단히 삐졌습니다.     


이럴 땐 알콜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자, 여기서 다시 과메기가 등장합니다.


11월에 주문하는 과메기를 조금 이르게, 얼른 주문했습니다. 주말이라 배송이 언제 시작될지 걱정이긴 합니다만, 넉넉히 5,6인분을 보냅니다. 동네친구들하고 같이 먹으라고.


쫀득하고 오묘한 감칠맛의 과메기 한 점 올리고, 다시마, 알배추, 마늘 고추에 부추, 꼬시래기도 곁들이고 초장을 올려서 한 쌈을 완성하면이 동생 마음이 풀릴까요? 쫄깃하고 살짝 비린 바다향의 과메기에 초장의 달달하고 매콤한 맛, 야채의 아삭한 식감이 어울리면 동생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물기 어린 하얀 알배추 위에 윤기 좔좔 흐르는 갈색의 과메기를 올리고, 초록 부추와 고추, 빨갛게 빛나는 초장 한 숟갈 올려 입 안에 넣으면 동생이 좋아할까요? (아, 동생을 달래려는데 왜 주책맞게 제 입이 자꾸 오물거린답니까!)


부디 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과메기를 먹고 동생 마음이 풀려야 할 텐데요. 생일케이크 대신 과메기를 보내준 언니의 마음을 '마흔 일곱' 동생이 알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사랑해, 축하해.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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