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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03. 2022

내 인생 최초의 태클

내 인생 최초의 태클. 나를 넘어트리고, 일어서지 못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 너, 바로 수학.

중학생때 만난 이 녀석은 너무나 강력해서 태클을 받고 쓰러진 다음에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이 녀석의 무서움은 강력한 한 방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를 공격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를 주저앉혔다는데 있다. 집요하기가 사채업자 저리가라다. 집합까지는 괜찮았는데, 이차방정식도 좀 할 만했는데,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무슨 소년만화도 아니고 계속해서 강한 적들이 쏟아져나오면서 다시 일어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흔히 말하는 수포자가 되어버린거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생물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던 순진한 소녀(;;;;;;;)는 세상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수학 덕분에 일찍 깨달았다. 적성검사가 이과로 나오더라도, 아무리 꿈이 생물선생님이더라도, 수학을 못하면 소용없었다. 수학문제도 암기로 몇 문제 풀고 누구나 다 아는 상식(수학 주관식은 1 아니면 0, -1이 답이다!)으로 답을 적으며 버텼다. 지금이야 수학을 선택하지 않고 문과로 간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조금 많이 아쉬워했다. 꿈을 바꿔야하기도 하고 실력이 부족해서 못갔다는 좌절감도 컸다.



이과를 향한 꿈을 접고 글자의 세계로 들어와 살면서 한동안 내 인생의 첫 태클, 수학을 잊고 살았다. 돈 계산할 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아들 구구단 공부할때 답지 없으면 확인을 못해주는 정도의 불편함 뿐이었다. 아무 문제 없이 숫자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최근 다시 수학의 강력한 태클을 맞고 정신이 혼미해져버렸다. 수학, 이 정없는 녀석이 이제 대를 이어 내 아들까지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 부족한 수학머리는 DNA에 박혀 아들에게까지 이어져 버렸다. 도대체 어느 조상님이 물려주신 DNA란 말이냐, 중3인 큰아이가 숫자들 속에서 길을 잃었고, 5학년 작은 아이는 아직도 구구단을 틀린다. (오, 주여!) 그럴때마다 드라마처럼 누구 닮아 이러냐고 탓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나를 닮아 그런 것을 정말, 아주, 진짜로, 잘, 알기 때문이다. 학원을 가고 과외를 한다고 트일 머리가 아니다. 진작부터 대비하고 애초에 스파르타식으로 잡아가며 가르쳤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가보지 못하 길을 아쉬워하며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 길이다. 이제와서 뭐라 말하겠는가.



사실 수학 이후로도 많은 태클을 당해봤다. 시험도 떨어져보고, 남자한테 채여도보고, 돈한테 버림도 받아봤다.(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도 많다!) 반 백년 살다보면 태클 들어온 적이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들어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올거면 살살 올거라도 사정해볼 수도 없다. 미리 준비도 못한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 넘어진 다음에야 알아챈 적도 많다. 레슬러나 럭비선수처럼 강력하게 되받아치는 것도 잘 못한다. 그럴 땐 그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다. 무수한 태클들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만 해도 대견하고 기특하다. 쓰러져 있을 수 없는 인생인걸 아니까 천천히 느릿느릿 일어나서 또 걸어가야 한다.


그러니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말라고 노래하지 말고, 태클이 와도 또 일어서자고 노래해야겠다. 어차피 태클로 가득찬 세상이니까. 그래도 수학, 너어는 정말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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