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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15. 2022

배포 큰 여자가 될랍니다

브런치 발행글이 못 마땅하더라도

그냥 무작정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한글 파일에 저장해둔 글을 복사, 붙여넣기 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글쓰기 창에서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나만 알고 있는 좋은 정보도 없고, 떠오르는 감성적인 글귀도 없으면서 냅다 아무 글이나 생각의 흐름대로 써내려가는 용기라니! 내가 언제 부터 이렇게 배포가 큰 여자였나. 나 스스로의 대책없음에 조금 놀랐다.


사실은 어제 아침에 발행한 글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와 가슴이 아니라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글이라서다. 주말동안 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읊으며 그저 징징거리만한 일기 같은 글. 못마땅했다. 좀 더 정제되고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발행했어야 하는데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픈 욕심에 부족한 글을 그냥 발행해 버렸다. 오래 삭히지않고 바로 무쳐 먹는 겉절이는 싱싱하기라도 하지, 내 글은 싱싱함은 커녕 풋내만 가득했다. 


그래서 다음 글은 조금 욕심내보고 싶었다. 수정도 하고 편집도 해서 완성도 있는 글을 발행하자, 생각했지만 욕심이었다. 결국엔 마구잡이로 머릿속을 헤집어 아무말이나 뽑아내 쓰고 다. 주제도 소재도 평범하고 특별한 경험이 담겨있지도 않은 글을 간신히 짜깁기 한 후 염치없이 발행을 누르겠지.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친절한 구독자 분들의 온정에 기대 하루치의 자존감을 채우겠지. 그럼, 배포가 큰 게 아니라 무식한건가?


갑자기 우울해질것 같다. 아, 안되겠다. 어차피 발행버튼을 누를거면 약간의 허세를 부려보자. 이왕할거면 좋은 쪽으로 생각해봐야지. 그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겉멋이다. 해보자, 뻔뻔하게 선언하자, 양심세포는 잠시 감옥에 가둬두자!


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내세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전기 낭비, 에너지 낭비, 읽는 사람의 시간을 낭비할 만큼 못난이 글은 아니다! (으악!)


이 글은, 뭐라도 적어놔야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을 것 같은 절박함이다!

꾸준히 쓰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자의 아름다운 움직임이다!

정확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어 고여 있는 생각을 뽑아내려 애쓴 흔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씩 자라는 깊은 호숫가의 이끼들처럼, 한 발 한 발 전진해서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는 마라토너의 다리처럼, 한 꼭지씩 글을 쓰며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글쓰기 버튼을 바로 누르고 후루룩 글을 쓴 뒤, 발행버튼을 누르는 대담한 짓도 괜찮다.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1호선 열차 안에서 노래부르는 아이돌 연습생처럼, 창피하지만 날것의 부족한 글도 발행해보자. 배포가 큰 여자, 과감한 여자가 되어보자.


이렇게 다짐하며 글 하나를 더 쌓는다. 분명 이것도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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