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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17. 2022

건강검진,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건강검진 당일이 되었다!

몸에 기운이 없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 지지하는 팔목, 책상에 닿은 팔뚝에도 힘이 없다. 어제부터 고기를 먹지 못하고, 김치를 먹지 못하고, 매운 국물을 먹지 못한 탓이다. 맑은 어묵 국물에 밥만 말아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 두부를 사다가 간장과 참기름을 휘휘 둘러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아, 배고파.


오늘 점심으로 싸온 흰 우유와 쌀카스테라를 쳐다보는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다. 내가 저 쪼가리를 주워 먹고 내일까지 버텨야하는구나 싶어서 서글프다. 내 너그러움과 매력 모두 탄수화물과 알콜, 단백질의 협동작전에서 나오는 것인데 오늘은 먹은 것이 없어 그런지 두통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러가며 힘겹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니 곧 12시. "어떻게 벌써 열, 두, 시~~~" 선미도 아닌데, 12시를 노래하고있다.


카스테라와 우유로 허기를 면하고 났는데, 난데없이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 일 없어? 어제 하도 흉한 꿈을 꿔서.....


무슨 일이길래 톡으로 안부를 다 묻나 싶어 어떤 꿈이냐고 물었다.


언니가 무슨 사고로 죽어서 내가 엄청 울었어. 엉엉.


어라, 나 내일 건강검진인데. 뭔가 암시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엉엉 울었다는 동생이 귀엽기도 해서 얼른 톡으로 답을 했다.

혹시 뭐라도 나오면 예지몽인거라고.

그랬더니 동생의 답.


그럼 나 복채줘라.


이런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겨우겨우 낮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었다. 장결정 약을 먹고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아이들은 햄버거로 저녁을 대충 때우고 나는 일찌감치 침대에 드러누웠다. 자고 일어나 새벽에 한 번더 장결정을 하고 나면 검진을 받는다. 마침 내일은 수능일, 덕분에 재량휴업일이라 따로 공가를 내지 않고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 (수험생 파이팅)



드디어 대망의 수능일......이 아니고, 내 검진일. 간만에 작은 아이 등교를 챙겨주고 병원으로 나섰다. 지난 번 검진 때는 여성전문병원에서 받았는데, 올해는 집앞에 새로 생긴 내과에 접수했다. 개원한지 얼마안 된 개인병원이라 조용하고 깨끗했지만 체계가 없어 산만하고, 자잘하게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검진이나 수액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역시 돈은 이렇게 버는거다.


 다행히 올해부터 보조되는 금액이 있어 혈액으로 진단하는 암검사도 추가신청하고 기초검진, 엑스레이 등을 차례로 진행한 후 내시경을 받았다.

눈 감았다 뜨니 모든 일이 끝나있었다. 내가 의식이 없는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 멍한 상태로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커피와 알콜에 시달린 내 위와 십이지장을 보고, 장에 붙어 있다 떨어져 나간 용종 사진도 봤다. 위염 치료에 관한 추가 설명을 듣고 약을 처방받고 나오는데, 서서히 멍해있던 의식이 또렷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운전을 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 변화가 신기했다.


의사는 오늘은 죽을 먹으라고 했지만, 치과진료를 마치고 나와서도 한국인들은 김치불낙죽을 먹는다지 않는가! 나도 한국인의 얼을 이어받아 흰죽따위는 먹지 않겠다고 결연히 결심했다.


돌아가는 길에 오늘 학교를 가지 않아 늦잠 자고 있는 큰아들을 불렀다. 아들과 함께 평일 브런치라니. 건강검진 덕에 이런 호사도 누리는구나 싶어 사진도 잔뜩 찍었다. 전날의 굶주림을 보상하듯 둘이서 메뉴 4개를 시켜 잔뜩 먹고 음료까지 마신 후에 느긋하게 돌아왔다. 물론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이러나 저러나 동생의 꿈은 개꿈인걸로 드러났고,(휴, 다행) 나는 오늘 밤 내시경 마친 기념으로 알콜을 흡입할 예정이다. 안주는 지금부터 고민해야지. (대장 내시경 끝난 후에 먹을 맛난 안주 추천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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