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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22. 2022

오늘의 행복을 건져냅니다.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가져온 장미와 유칼립투스

남편의 사업이 아무 진척이 없어도, 아들의 성적이 밑바닥에서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아도, 업무와 살림에 허덕여도, 통장 잔고가 바닥을 넘어 마이너스를 향해가도, 불어난 뱃살을 구기고 접어서 바짓속에 넣어도 행복하다.  


퇴근 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온라인 서점 택배를 발견할 때, 도서관에 신청했던 책을 제일 먼저 대출할 때,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내 취향의 책을 발견했을 때, 그렇게 집어들고 읽은 책에 감동받았을 때 나는 행복하다.


아침에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바로 오는 버스, 횡단보도에서 바로  켜지는 초록불, 한 걸음 앞에서 포르르 날아가는 참새떼들, 칙칙한 갈색 사이로 선명한 붉은 색과 노란 색으로 변한 이파리가 눈에 들어올 때도 행복하다.


일어나서 마시는 생수 한 컵, 오후 업무 전에 마시는 믹스 커피 한 잔, 저녁에 마시는 맥주 한 캔 덕분에 또 행복하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유행하는 드라마 한 편 보며 '어머어머' 추임새를 넣을 때도 빼놓을 수 없다.


세제를 뿌리고 솔로 박박 딲아 물을 뿌려 깨끗해진 세면대와 변기를 보면서도 행복하다. 설거지를 마치고 개수대를 다 닦은 후 빨은 행주를 널면서도 행복하다. 건조기에서 갓 나온 따끈한 수건을 만지며 개킬때도 행복하다. 베란다에 가득한 초록이들 잎을 매만지며 물을 줄때도 행복하다. 지저분한 화장대 위를 뒹구는 화장품들을 정리해놓으면 더 행복하다.


준비한 내용대로 수업을 매끄럽게 진행하고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을 볼때, 한 명 한 명 눈 마주치고 서로 경청할 때, 오늘의 수업이 재밌었다고 말해줄 때, 저희들끼리 천진하게 잘 놀때, 가방 매고 사랑한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집에 갈때 그 모든 순간에 행복을 느낀다.


침대에 누워 나보다 작은 몸집의 아이와 뒹굴며 짧은 영상을 볼 때,  서로 시덥지않은 일로 낄낄대며 웃을 때, 둘이 부둥켜 안고 잠들때 역시 행복하다. 100키로가 넘는 거구의 아들이 나를 번쩍 안아들때,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대다가 앉아서 몇 문제라도 문제집을 풀어낼 때는 말도 못하게 행복하다.


이렇게 찾아낸 오늘의 행복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열 손가락으로 부족할 만큼 꼽을 수 있어서, 갓 구워낸 식빵 같고 막 쪄낸 호빵같아서, 감사하다. 행복할 수 있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고통과 좌절의 순간들 속에서도 무수한 행복들을 건져 낼 수 있어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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