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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놀이를 아시나요?

by 피어라

=== 우선 제목 때문에 마음이 아프신 분들이 계실까봐 걱정됩니다. 혹시나 불편하시다면 죄송하단 말씀부터 드립니다. ===


지난 주, 중3 아들에게서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 반 남자아이들 몇몇이 이태원 압사 놀이라면서 서로 부딪히고 위에서 밑으로 누르는 놀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다그치듯 물었다.

"너도 그 놀이 하고 놀았어?"

다행히 아들은 아니라고 했고, 뒤이어 쏟아질 엄마의 말들을 잔소리라고 예견한 듯 '몇 명이 잠깐 그러고 논거야, 다시 안그랬어'라고 말하며 대화를 차단했다.


아이에게 더 붙이려던 말은 그대로 가라앉아 내 속에서 꿈틀거렸다. 제대로 된 사과도 후속조치도 없어 아직도 아물지 못한 마음의 딱지가 다시 뜯어져 피가 고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아픈 사건인데, 어떤 아이들에게는 단순히 몸으로 노는 놀이에 붙이는 이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걸까.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들한테 화가 났다. 그 부모들에게, 어른들에게 뒤이어 나에게까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7958


심각하게 여긴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얘기를 들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언론뉴스로 요즘 10대가 참사를 희화화 한다면서 심각하게 여기는 뉴스가 나왔다. 곧바로 지역 맘카페에도 관련뉴스글을 링크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도 몇 건의 게시글을 보았다.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고, 공감과 감수성을 기르지 못한 아이의 부모들에 대한 비난글도 종종 보였다. 어른들은 철없는 10대들을 향한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예전부터 몸으로 누르고 노는 놀이는 있었다. 수련회나 수학여행가면 자기 전에 이불 위에서 엎드려 서로 몸을 포개며 놀던 놀이였다. 아이들은 '햄버거놀이' 라고 불렀다. '김밥놀이'도 있었다. 서로 몸을 밀착시킨 후 돌돌 감으며 놀았다. 그냥 차례로 엎드리며 몸을 부대끼기만 하는 것인데도 아이들은 웃으며 놀이를 즐겼었다. 교실뒷편이나 복도에서 선생님들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즐기던 놀이였지만, 안전교육이 강화되면서 학교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놀이였다. 그랬던 놀이를 다시 하면서 이태원이란 이름을 붙이다니. 이건 지능의 문제다.


혼자 조용히 분노하며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고민 하던 며칠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리 철없는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도 길을 걷다 희생된 사람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려고 일부러 저런 놀이를 만들어 놀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서로의 몸을 누르고 눌리던 놀이를 하던 중에 자연스레 언론에서 접한대로 무의식중에 튀어나와 '이태원 놀이'라고 이름 붙였겠지. 누군가 충동적으로 떠올린 이름이 며기저기 튀어나가 다들 그렇게 부른것이겠지. 왜곡된 인식으로 생각없이 모방하고, 생각없이 즐기는 문화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 어른들의 편향된 독설, 무책임한 발언들이 더 무지하고 수치스러웠다. 종교적인 편향이나 정치적인 몰지각함으로 왜곡하는 글들과 발언들을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근거없는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믿고싶다. 일부 청소년들의 깊이 생각하지 못한 충동적인 놀이였을 뿐이라고. 아무리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어른들의 걱정이 불신이 지대하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무분별하지는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큰 아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의 걱정이 어느 지점인지 이해하고 있는 듯, 이번에는 조금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심했다. 옆에서 듣던 작은 아들은 그런 놀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상처인듯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들려주신 얘기를 전하며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그렇게 누군가 말해주면 된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면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로 호들갑스럽게 확대하지 말고, 학교나 부모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경각심만 키우라고 소잃고 외양간 고치려들지 말고 진심으로 얘기해주면 된다. "애들 미쳤어요"라고 걱정하는 것 처럼 돌려서 비난하지 말고 어떻게 이 아픔을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제대로 말해주는 것으로 아이들에겐 충분하다. 언론도, 부모도, 학교도, 종교도 다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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