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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24. 2022

용감한 기혼녀

유부녀보다는 기혼녀가 맞는 것 같아요 : )

용기가 있어서 결혼한게 아니야, 결혼했기에 용기가 생긴거야.


나는 20XX년에 결혼했다. 33살이었다. 지금이야 늦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때 당시 여자로선 늦은 나이였고, 남편은 남자로서 이미 혼기를 놓친 나이, 35이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아이들이 사춘기 접어들어서며 종종 우리 부부한테 왜 결혼했느냐고 물어보곤했다. 그럴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빠가 결혼하자고 졸라서.", 그럼 아빠는 왜 엄마한테 결혼하자고 했냐고 연타로 질문이 날아들면 내가 먼저 대답해준다. "얼굴보고." 아들은 "엄마 뻔뻔해."하고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결혼한 이유에 대해 더 말해달라고 하면 곤란했기에 어이없어하는 아들의 침묵이 고마웠다.


내 나이 서른 세살, 죽을 것 같은 사랑도 아니고 결혼에 대한 압박이 거셌던 것도 아닌데 결혼을 하게 됐다. 적절하게 설명할 단어를 갖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무난히 퉁칠 수 있는 말을 찾는다. 내 경우에는 '타이밍'이었다. 누군가 어떻게 결혼을 했냐고 물어보면 나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결혼할 '타이밍'에 옆에 있던 사람이라고. 신이 맺어준 인연이건, 우연의 산물이건, 절묘한 타이밍이건 어쨌든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생각이 안나는데, 웃기게도 결혼하고 같이 살기 시작하던 날 첫 아침의 생경함은 분명히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은 누가 차리지?'라고 생각했다. 밥을 먹어야 하나? 아침밥은 누가 하지? 난가? 나여야하나? 하는 고민으로 이불 속에서 한참 꼼지락거렸다. 눈치게임의 패자는 나였고, 어설프게나마 밥을 차렸던 것 같다. 뭘 만들어 어떻게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내가 해야되는건가? 라고 생각하던 순간은 선명하다. 그렇게 '누가', '무엇을'의 고민으로부터 내 결혼생활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세월이 벌써, 내일 모레면 꽉 채운 십칠 년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무엇때문에 결혼을 했는지, 왜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선택했다면 너무 무모한 결정이었고, 일반적 사회로의 편입을 원했다면 안일한 선택이었다. 별다르게 용기내지 않고 결혼했지만, 결혼하고나서 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용감해져야했다. 누구나 예상하는 수많은 문제들. 예컨대 남편과의 갈등, 시댁의 어려움, 경제와 가사분담, 취향의 문제, 육아문제 등등등,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점점 커져 정치나 사회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살아가는 방향과 방식, 신앙과 이성의 조화에 감성까지 버무려가며 살아야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라는 한 인간의 바닥을 경험했다. 현실적인 결혼의 문제보다 내 안의 문제를 발견하고 마주하는 과정이 더 힘들었다. 진짜 용기가 필요했다.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차례로 견뎌내며 불어나는 체중따라 겹겹의 나이테를 새겼다. 결혼과 육아라는 최고 난이도의 미션을 통과하며 만든 지금의 나. 방황하던 젊은 날보다 너덜하긴 하지만, 조금은 더 여유롭고 조금은 더 넓어진 내 모습이 나는 꽤 마음에 든다. 남편도 그렇다. 나와의 결혼생활을 통해 남편 역시 단순히 나이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성장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며 변함없이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치열하게 싸워야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을정도로 원초적인 싸움들이었다. 그 과정을 겪었기에 연애시절보다 지금의 남편을 더 사랑한다. 십칠년 간의 담금질로 만들어진 나는 요즘 새롭게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결혼생활을 겪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비혼으로 살면 신나게 노느라 글쓰기를 안했을 것 같으니,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유부녀라서다. 제발 그렇다고 하자.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결혼을 긍정하는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 온 지금의 내 모습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고, 그 과정을 함께 한 내 가족을 사랑한다. 상당히 진부하지만 진심이다. 결혼을 안해도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키우는게 내 육아의 목표지만, 이왕이면 아들도 결혼하면 좋겠다. 삶의 여러 선택지 중에 용기내어 '결혼'을 고르길 바란다. 한 인간으로서 용감하게 잘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치열하게 서로 성장하라고. 문제는 선택당할 수 있을 만큼 멋있어야 한다는건데, 솔직히 그게 좀.....자신이 없다. 미안하다 아들아. 아빠 탓을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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