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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30. 2022

시골풍경과 도시경관 가운데서 삽니다.

묵은 감정을 털어놓기엔 제격이지요.

꿕꿕 꾸꾸 꾸억꾸억 꾸꾸-

또 멧비둘기가 운다. 숲세권이라고 홍보해대던 아파트 답게 시도때도 없이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단지 안을 거닐 때면 처음 보는 알록달록한 새들이 눈 앞을 포로로 지나기도 하고, 베란다 창문 틈엔 가끔 매나 올빼미가 앉았다 가기도 한다.(애석하게 나는 본 적 없다. 둘 다 남편만 봤다.) 까마귀나 까치, 직박구리는 발에 채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수시로 V형태로 날아가는 기러기들도 볼 수 있다. 오리가 왜가리 종류는 밖에 나가면 늘 그 자리에 있다.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논이 펼쳐진다. 사계절 변화하는 논, 갓 모내기가 끝난 아기 베냇머리같은 벼가 쑥쑥 자라서 가을에 풍성한 황금색으로 물드는 풍경을 매년 볼 수 있다. 식당가와 커페촌이 밀집한 저수지도 있고 드넓은 생태공원도 있다. 도로와 아파트가 가득한 도시 한 가운데서 탁 트인 공간을 즐기며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이다. 아이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친환경 논으로 모내기와 벼베기 체험을 가고 생태공원으로 현장학습을 가기도 한다. 넓은 논을 다 밀어서 상가나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꾸준히 민원을 넣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논과 벌이 있어 지역이 지역답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충분히 산을 깎고 논을 메워 아파트를 지어댔다. 인구 30만 정도의 도시가 50만 육박하는 도시가 되었으니 대단한 변화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여긴 도시 자체가 변해버렸다. 그 와중에 나도 이 곳으로 이사해 살고 있으니 도시의 개발 덕을 본 셈이다. 더 편리한 기반시설, 더 풍부한 문화생활을 위해 반도시 반시골인 이 곳이 좀 더 발전하길 바라면서도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유지되길 바란다. 보호하고 유지되길 바란다. 양손에 다 떡을 쥘 수는 없는 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삶의 질 상승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봐도 자연이 주는 혜택이 크다.


풀과 나무, 물과 바람을 떠올리니 겨울공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군데군데 쌓여 녹지 않은 눈과, 사람들의 발길로 환해진 길들 사이로 추위에도 아랑곳않는 생명들을 만나 보고 싶다. 봄을 준비하는 작은 싹들, 부지런히 먹이를 모으는 새들, 얼음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모자를 덮어쓰게 만드는 찬 바람들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내 속에 쌓인 묵은 감정들을 털어버리고 싶다. 불편함, 부끄러움, 열등감, 시기와 질투, 우울, 원망, 허무, 실망, 불안, 섭섭함, 허탈, 초조, 그 모든 부정의 기운들을 겨울 들판에 놔두고 가벼워진 몸으로 집으로 향하고 싶다. 이렇게 휘휘 저어 내 안에 쌓인 지저분한 감정들을 다 털어버리고 오면 일년을 마무리할 마음이 들겠지.


마침 오늘이 12월 30일. 2022년의 마지막 금요일이다. 혼자 겨울들녘을 걸어보기 제격인 날이다. 걸으며 2022년을 반성하고 2023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퇴근하고 걷기엔 너무 어둡고, 깜깜하고, 무섭고, 외롭고 또 힘들기도 할 것 같으니 토요일에 걸으면 어떨까? 내일이 토요일이고 31일이니 겨울산책은 내일이 더 낫겠다. 더 좋은 날을 선택하는 것이지, 절대 미루는게 아니다. 아니면 새해 첫 날의 산책도 괜찮을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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