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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26. 2023

눈이 만들어준 대박 찬스

드디어 아들들이 밖으로 나갔다!

두 아들이 각각 졸업과 방학한 지 4주째... 지난 1월, 두 아들은 게으름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그야말로 게으름의 현신이라도 된 모양새를 하고 지냈다. 예비 고등인, 그리하야 보통의 가정에서라면 대입 레이스에 뛰어들 준비를 하며 고입예비반에 다니며 열심히 기초를 닦아야할 큰 아들은 새벽 3시에 자서 다음 날 1시에 일어나 간신히 밥을 먹고 핸드폰을 하고 논다. 간신히 하루 한 두 시간 정도 문제집을 풀고 중등수준의 단어를 외우며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직 초등인 작은 아들마저 새벽 2시 경에 잠들어 다음 날 1시에 일어나는 백수노릇에 적극 동참중이다. 자신은 핸드폰이 없어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못하니 다 엄마 탓이라고 투정 부리며 형보다 더 집콕을 즐긴다.  


간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본의아니게 두 아들 흉부터 잔뜩 늘어놓는 이유는, 집돌이 두 아들 덕분에 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기 위해 졸렬하게 아들 핑계, 그것도 험담에 가까운 핑계를 대는 엄마라니. 쓰면서 자괴감이 말할 수 없이 덮쳐들어 아들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몰려든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을라치면 상대적 박탈감, 기회의 불평등 운운하며 자신들도 컴퓨터 게임 하고 싶다고 왕왕대는 아들들과 실갱이 벌이기 귀찮아서 아예 컴퓨터를 켤 생각도 안했다. 망해버려라, 로블록스.


이상하게도 쓰지 않게 되니 자연스레 다른 브런치 글을 읽는 것도 멀어졌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 것은 충분히 핸드폰으로 할 수 있음에도 잘 되지가 않았다. 읽고 소통하는데 필요한 집중력의 문제였을까,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는 것이 부러워서였을까. 내가 쓰지를 못하니 브런치 앱 자체를 잘 열지 않았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다른 활자들을 읽는데 보냈다. 그렇게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지가 벌써 한 달째다. 브런치가 메세지를 두 번 보낼 동안 아무글도 쓰지 못한 이유에 아들들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눈이 온다. 세상에나 간만에 잔뜩 내려서 온 세상을 다 덮고 있다. 기회다! 아들들을 집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놓칠 수 없는 대박 찬스다. 만드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먹기에는 간편한 김밥을 말았다. 아들들을 깨워 대충 입에 넣어 배를 채우게 한 뒤 장갑과 귀마개, 신발을 챙겨놓고 나가서 놀으라고 권고했다.(실상은 내쫒은거에 가깝지만)제법 머리가 굵은 큰 아들은 눈이 오는 것과 자신이 나가 놀아야 하는 것의 상관관계를 설명해달라 했지만 다 필요없다. 눈이 오면 어린이는 밖에서 눈을 맞고 놀아야 하는 것이 우리 집안 가훈이자 전통이며 엄마의 육아관인것이다. 나가라면 나가라. 투덜대는 아이들을 내보내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달려들었다. 아니다. 이럴게 아니라 목욕재계부터 하자. 샤워를 하고 머리를 정돈하고 커피를 끓여 방으로 들어왔다. 작은 전등을 켜고 컴퓨터 전원을 켠 후, 브런치에 접속했다.


아-나도 모르게 작게 탄성을 질렀다.


눈처럼 하얗게 펼쳐지는 브런치 창을 보니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린다. 설레는 마음으로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오늘 일을 적어간다. 아이들은 하얀 눈을 밟으며 놀고 있을테고, 나는 하얀 모니터에 까만 글자들을 새겨가며 이 시간을 즐긴다. 그동안 참았던 만큼, 오늘은 브런치를 만끽해야지, 실컷 시간을 보내야지, 이 시간이 그리웠던 만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댓글도 달아야지. 설레는 오후, 눈이 만들어준 선물같은 시간을 붙잡으며 한 자 한 자를 마음에 꾹꾹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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