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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29. 2023

동갑내기 사촌 2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이왕이면 아이에게 동갑 사촌이 안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동갑 사촌에게 비교당하며 자란 내 어린 시절의 상처(동갑내기 사촌 이야기) 때문에 갖게된 자연스런 바램이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동생이나 시댁형님댁이나 이미 큰 아이들이 있어서 나서 동갑 걱정은 하지 않고 큰 애를 낳았다. 사실 그때는 늦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라 동갑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문제는 둘째 때였다. 마흔 전에 둘째를 낳겠다며 노산을 감안하고 둘째를 갖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삼십대 후반에 둘째를 임신했다. 7월 말이던가 8월 초 였다. 네 살터울의 둘째 소식을 친정식구들에게 전하는데 동생이 난데없이 자기도 둘째를 계획한다는 거다. 가족들은 모두 동생이 여섯살 난 조카 아이 하나를 외동으로 키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는 둘째 선언이라니. 동생 얘기론 더 차이지면 키우기 어렵다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임신시도를 한다는거였다. 그런 동생에게 왜 하필 지금이냐, 내년에 갖으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자기 가정상황에 맞게 계획하고 아이를 갖겠다는데 동갑 사촌 만들어주지 말자고 임신을 미루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다음해 봄 3월, 나는 건강한 남자아이를, 네 달 뒤 한 여름에 동생은 여자아이를 낳았다. 같은 토끼 띠 아이들은 서로의 외모만큼이나 전혀 다른 성향과 기질을 타고 태어났다. 성격도 취향도 성장속도도 전혀 다른 두 아이. 나이는 같지만 성별이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둘째 사랑이 지극한 우리 자매들의 극성때문에 그런지 어른 들 누구도 두 아이를 비교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 걱정과는 달리 두 아이는 자랄수록 서로 잘 지낸다.


  이제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사춘기 돌입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둘이 만나면 같이 잘 논다. 물론 요즘은 각자 핸드폰으로 게임하며 놀기에 더 바쁘긴하지만, 서로 무릎을 베고 누워 텔레비젼을 본다거나,  몸으로 부딪히는 장난을 한다거나,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논다. 가만 보면 여자인 조카아이가 조금 더 누나같고, 남자아이인 내 아이는 두 세살 밑의 동생같아 보이기도 한다. 같이 놀이공원도 가고 여행도 같이 간다. 서로 본체만체하며 서먹한 사촌이라면 동생과 내가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 늙어가며 서로의 절친이 되어가고 있는 엄마들에게 내 아이와 조카가 싸우지 않고 만나서 잘 지낸다는 건 정말 커다란 장점이다. 지금은 외려 같은 성별이 아니라서 온천이나 수영장, 카페 나들이를 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울 정도다.


  

  그러고보면 동갑사촌이 생길까 저어했던 내 마음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까 걱정해서 바깥 나들이도 못했다던 고사성어 속의 어리석은 그 남자처럼, 벌어지지 않을 일을 놓고 사서 한 근심과 걱정이이었다. 동갑이건 동성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었을까. 아이들을 놓고 비교해대며 저울질 하는 어른들이 문제인거지 아이들 간의 문제는 아닐터인데 말이다. 설령 나처럼 주위에서 비교당한다 하더라도 내가 더 많이 내 아이를 사랑하고 응원하고 북돋워주면 되는 일이고 그로 인해 상심한다면 그건 모자란 내 인격 탓인거다. 결국 동갑사촌에 대한 걱정은 극복하지 못했던 내 열등감의 문제였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내 아이를 향한 믿음이 있다면 하지 않았을 걱정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작은 상자에 담아 내 의식 깊은 곳에 치워뒀던 불안과 열등감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먼지를 털고 상자를 열어 어린 날의 나와 상처받았던 마음을 마주한다. 먼저 어린 내 모습이 보이고, 예전에는 몰랐던 내 사촌의 어린 날도 보인다. 거기에 내 아이와 조카가 비춰보이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나도 같이 보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숨기고 싶었던 마음을 지금 마주해보니 알겠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어렸다는 것을. 아직 쓰라리기도 하고 다시 상자에 담아두고 싶은 자기 연민도 남아 있지만 지금은 마주하고 꺼내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조금 어른이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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