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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27. 2023

동갑내기 사촌

같은 성별, 같은 나이, 나보다 뛰어난 아이가 옆에 있다는 건-

  내게는 나보다 몇 달 먼저 태어난 이종사촌이 하나 있다. 성별도 나이도 같아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그 사촌의 이름은 '아름다울 미' 자에 '착할 선'자를 쓰는 미선이다. 박미선.


  초등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이 엄친딸때문에 한탄할 때 나는 사촌과 비교 당해 눌러진 자존감을 어루만지며 자랐다. 엄마가 하루종일 가게 일을 할 동안 동생들과 온 집안을 헤집으며 놀기 바빴던 나는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서 어김없이 미선이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미선이는 밥먹고 나면 자기가 먹은 것도 물론이고, 식구들이 먹은거 까지 싹 다 설거지 해놓는다더라." 

초등학고 들어가기 전부터 발판을 딛고 올라가서 컵을 씻어놓는 기특한 일을 하던 미선이는 이제 저녁 설거지까지 다 해놓는 보기드문 효녀로 자라 엄마의 부러움을 샀고, 엄마가 집안일에 지칠 때마다 늘상 불려오는 이름이 되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 스스로 공부하고 숙제도 해놓고 공부도 잘한다던 미선이, 언니 오빠 말 잘 듣고 친구들하고도 사이좋게 잘 노는 미선이, 반에서 상장도 타오는 미선이, 미선이, 미선이, 미선이. 성인이 될 때까지도 미선이를 떠올리면 '착한 아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동시에 착하지 못했던 나,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 내가 같이 떠올라 기분이 언짢아졌다. 스스로에게 붙인 '착하지 못한 아이'라는 딱지는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요인중 하나로 질기게 남아있었고.


  미선이는 어른들이 기분을 살피는데도 능숙해서 외가 어른들 모두의 예쁨을 받았다. 심부름도 잘했고 어린 사촌동생들도 무척 잘 돌봤다. 언니오빠들하고도 사이좋게 잘 지냈다. 모두, 내가 잘 못하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어른들은 나와 미선이를 비교했고, 칭찬은 미선이가 질타는 내가 가져갔다.


  엄마가 미선이 얘기를 꺼낼 때마다 듣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항의한 기억이 없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 듣기 싫었지만, 미선이를 칭찬하며 나를 후려치는 엄마의 말에 반박을 못한 것은 내 죄책감과 열등감때문이었다. 나는 미선이처럼 엄마를 도와주지도 않고 미선이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나는 삼남매의 맏이, 장녀였지만 미선이는 삼남매 중 막내딸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막내도 저렇게 기특한 데 언니가 되어서 너는 뭐하냐는 자괴감이 상당했었다.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절실하게 알고는있지만 미선이처럼 엄마를 돕거나 집안일을 하는데 무뎠다. 


  하지만 그렇게 비교를 당하면서도 나는 미선이를, 정확히는 미선이와 노는 것을 좋아했다. 미선이는 사회성 떨어지고 관계맺기에 서툰 내가 어렵지 않게 놀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싸우고 토라져도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는 인척이라는 점이 이럴때는 참 다행스럽다. 명절때마다 만나서 같이 놀 수 있고, 그나마 우리집과 가까운 곳에 살아서 자주 볼 수 있는 친척이었다. 당시 이모네는 경제적으로 우리 집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당연히 이모네 놀러가면 미선이가 주는 다양하고 맛난 간식들도 좋았고, 내겐 없는 장난감들도 좋았다. 선뜻 빌려주는 책들도 더없이 고마웠다. 또래에 비해 미성숙한 나에 비해 미선이는 여러모로 칭찬받는 아이였다. 내게 양보도 잘 해주고 나를 챙겨주는 착한 아이었다. 미선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미선이를 부러워했을지언정 미워하지는 않았다. 


  어느 방학 때, 이모네 집에 놀러가서 미선이와 우리 자매가 같이 보드게임을 했다. 아마 인생게임이나 부루마블 종류였을 것이다. 나는 계속 해서 지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더 기분이 나빠져서 게임을 엉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기분으로 뚱한 얼굴을 하고 대충 게임을 하고 있었다. 미선이는 내 기분을 살피며 내가 던진 주사위가 판 밖에 나갔으니 다시 하는게 맞는다거나, 자신에게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부딪혔다고 말하며 내게 기회를 더 주는 식으로 게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자기 차례에는 일부러 실수를 반복하며 내가 자신을 앞서도록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라도 게임에서 이기는게 좋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대의 아량으로 얻은 얄팍한 승리의 기쁨은 멍든 사과같아서 상한 자존심과 함께 마음에 오래 남아있었다. 진정한 승자는 내가 아니라 미선이라는 자각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싫어하지는 않았어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나보다 앞선 아이, 나보다 더 어른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아이를 아무런 시기심과 경쟁심 없이 진정으로 좋아하기는 열서너 살 아이에겐 힘든 일이다. 


  초등학교를 끝으로 더이상 미선이와 만나서 논 기억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데면데면한 사촌지간이 그렇듯이 엄마를 통해 전해듣는 이야기가 미선이에 대해 아는 전부가 되었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합격했네,  어디로 어학연수를 갔네, 졸업을 했네 어디에 취업했네, 같은 소식들 말이다. 그 사이사이 친척 어른들의 장례나, 못 본지 오래된 사촌들의 결혼식에서나 얼굴을 잠깐씩 보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말이다. 


  요즘같은 명절 즈음이면 미선이가 궁금할때가 있다.  미선이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른들의 칭찬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눌렀던 적은 없었을까? 저도 고작 열살 남짓한 아이. 멋대로 굴고 싶은 마음보다 참아야만 했던 건 아닐까? 이제와 새삼 속 얘기를 나눌 사이는 아니니 나는 평생 미선이의 속 마음을 알 수 없겠지.   


  속절없이 늙어가는 처지에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하나쯤 미선이보다 뛰어났으면 좋았겠다 싶다. 그래서 더 늙은 내 어머니가 이모에게 내 자랑 좀 해보게 하고 싶은데, 아쉽게 아직 그런 성취를 거둬보지 못했다. 그래도 자랑이 뭐 별거인가, 잘 먹고 잘 살면 되는거지. 살아남는자가 이기는 거라고, 미선이보다 더 오래 살면 건강과 장수를 자랑할 수 있으려나.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웃어본다. 어린 날의 열등감도 꽤나 옅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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