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Feb 07. 2023

김성호의 <회상>과 박선우의 <햇빛 기다리기>

  1989년, 교복도 입지 않는 고등학생시절, 아마 수능이 생기기 전 쯤에 제일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다. 조곤조곤 약간 쓸쓸하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 김성호의 '회상'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인기가수 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법 인기를 끌었고 이후로 오래도록 노래방에 가게 되면 분위기 흐린다는 핀잔에도 불구하고 술기운에 한 번쯤 부르곤 하던 노래가 되었다. 그랬던 노래가 수십년의 시간을 넘어, 알수없는 알고리즘을 타고, 오늘, 내게로 왔다.


   초록 잔디 위에서 노 신사가 서 있다. 가느다랗고 흰 머리카락, 살짝 처진 눈썹, 여러겹 패인 주름을 하고 카메라앞에서 잔잔히 노래를 시작한다. 기교없이 힘빼고 담백하게 부르는 노래에 간단하고 깨끗한 반주가 얹어진다. 작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오래 전 노래를 듣자 가슴 어딘가가 아릿해지며 뉸가가 촉촉해졌다. '그때는 어려서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는 가사가 나오자, 결국 눈물이 흘렀다. 촉촉해진건 눈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이런 표정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노년이 겪어온 삶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살아왔길래 지금 저런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걸까?


  작년 겨울, 박선우의 두번 째 소설집 <햇빛 기다리기>에 실려있는 단편 <겨울의 끝>을 읽었을 때도 같은 결의 감동을 느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여전히 말간 햇빛을 기다리는 사람이 떠올라서 읽고 나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제였던가. 엄마는 목련이 봄의 시작을 맞이하는 꽃이 아니라 겨울의 끝을 배웅하는 꽃이라 했다. 그간의 모질고 억센 시절을 한껏 여리고 아름다운 자태로 떠나보내는 꽃이라고. 그 모습이 심히 환하고 주책스러워 사랑스럽기 그지없다고 했다. 누가 누구한테 뭐라는지. 겨울이 떠나가는 풍경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비로소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웃음이 나왔고, 뭔가를 실감하는 일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겨울의 끝」중에서


  마지막 한 글자 까지 다 읽고나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져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맑고 깊은 사람일까, 싶어서 괜시리 애절해진 마음으로 조금 울었더랬다. 그때 그 마음과 꼭같이 회상을 부르는 저 가수 처럼 되고 싶다.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서 생활태도며 공부 문제로 매일 같이 속앓이 중이다. 늦잠 자는 아이들을 깨우고 먹이고 공부로 잔소리 하고, 청소와 뒷정리로 얼굴을 붉히는 나날들, 형제간의 사소한 다툼에 나까지 더해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어제와 오늘. 거칠어지고 찌들어 가는 내 모습에 화가나고, 삭이지 못하고 터트리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이럴때 내 마음에 한줄기 바람, 맑은 햇살하나 전해주는 글과 노래 덕분에 반성하고, 회개하고, 뉘우치고, 끝내는 돌아본다. 오늘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남아 있는 법이다. 

 

https://youtu.be/FXfyvQl2bD0


<최근 영상도 아니고 1년 전 영상이라는데 난데없이 이 노래를 만나서 행복하고 감사했다. 여유되실 때 한 번씩 들어보시라고 링크 걸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동갑내기 사촌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