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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Feb 08. 2023

내가 몇 살인지 나도 모르고 울엄마도 모른다.

  지난 내 생일, 팔순 엄마가 카톡을 보내셨다. 띄어쓰기 하나없이 다다다다 붙어있는 글자들이 만들어내는 의미를 읽어낸 순간,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몇번째인지모르지만생일축하해


  그렇다, 태어난 연도와 띠는 기억해도 내가 올해로 몇 살이 되었는지는 나를 낳아준 엄마도 모르고 본인도 잘 모른다. 아닌말로 매년 바뀌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한단 말인가! 안그래도 복잡한 머리, 내 나이 덧셈하느라 부담을 주고 싶진 않다. 어른들이 년생이나 띠로 환산하여 나이 대신 기억하는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 나이에 대해 말하자면 조금 복잡한 전후사정을 말해야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쓰면서 알았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나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어느 해 12월 22일 동짓날에 태어났다.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대충 몇 시쯤, 하물며 오전 오후인가를 알아야 남들 다 보는 사주라는걸 볼텐데, 하도 오래전 일인데다 아이를 셋씩이나 낳는 바람에 헷갈리셔서 내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시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언제는 새벽녘이라고 대답하셨다가 언제는 또 밥짓는 냄새가 낫다고 말해주셨다.


- 저녁밥 먹을 시간에 태어났대요.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딱 한 번 사주를 봤는데, 그때 봐주시는 분이 역정을 내셨다.

- 아, 어떤 사람은 다섯시에도 먹고 어떤 사람은 아홉시에도 먹는데, 그렇게 말하면 어찌 봐주나!


   아무튼, 태어난 날은 12월 22일이지만 당시 교장선생님이시던 할아버지께서 12월 생보다는 1월 생이 살면서 유리하다면서 한 달만 있다가 1월이 되면 출생신고를 하라고 하셨단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흔했고, 우리 부모님은 할아버지 말씀을 따라 정확히 한 달 후인 1월 22일에 출생신고를 하셨다. 그리하여 내 주민번호는 @@0122가 되었다.


  당시에는 빠른년생이라고 해서 2월말에 태어난 아이들까지는 전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더랬다. 그러니까,  3월 1일생부터 다음 해 2월 말일생까지가 한 학년이 되는거다. 그러니 12월 출생신고하는거나 다음 해 1월로 신고한거나 제 나이에 입학하고 학교를 다니게 된거다.


  문제는 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생겼다. 학번이라거나, 나이를 따지는 위계질서를 겪게 되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동기이긴 하지만, 나이는 빠른년생으로 들어온 너보다는 언니인 것이고, 공식적인 나이는 실제 내 나이보다 한 살이 적은 것이며, 나는 너와 친구지만 사실 너는 나보다 어린 것이란 말이고 나와 너는 사실 동갑이고, 너한테는 내가 누님이 맞고 어쩌고 저쩌고 아이고 나도 내가 뭔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복잡하게 생각말고 간단하게 살자! 내가 주민등록상으로 몇 년생이고 실제 몇 년생인가가 뭐가 중요하냐, 어차피 다 같이 늙어가는데!


  그래도 젊을 때는 나이를 밝히는 한국인의 문화습성이 불편해도 정확한 내 나이를 말하고 싶어했다. 빠른 년생 취급 받으면 왠지 억울해하기도 하며 한 살이라도 분명히 차이가 지는 거라는 걸 밝히고는 했는데, 이제는 바뀌었다. 그깟 나이가 뭐라고 하나하나 정확하게 따져대나. 한 살이라도 적어지면 고마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만나이로 통일한다지 않나. 태어나서 일 년이 지나야 비로소 한 살로 쳐준다는거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지 열흘만에 두 살이 되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회춘의 기회다. 세는 나이에서 무려 두 살이나 빠져야하니 아직 오십까지 한참 남았다. 여자는 늙어도 소녀라했다. 되돌아온 두 살의 나이만큼 젊은 기운, 젊은 마음으로 살테다. 그러니 내가 몇 살인지 정확히 몰라도 괜찮다. 어차피 울 엄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내 나이. 2년에 한 번 건강검진 결과지에 찍혀 나오는 나이만 확인하면 된다. 그래, 사는데 나이가 뭔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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