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한다. 체에 거르는 동작을 반복할수록 곱게되는 가루와 달리 말은 덧붙이면 덧붙일수록 원뜻에서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말을 하면 할수록 실수하기도 하고 잘못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니 말을 조심하라는 이야기일터다.
그렇다면 글은 어떨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나온다. SNS에 올리는 짧은 글이나 직장에서 쓰는 보고서, 혹은 혼자 두고 보는 일기까지, 쓰면 쓸수록 나아지고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이 글이다.
많은 작가들이 어느 날 번개처럼 찾아온 영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동안 꾸준히 글을 쓴다. 하루키나 김연수 같은 대가들 뿐만 아니라 습작을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조차 분량이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저 쓰기만 한다. 작가에 따라 타이머나 알람을 사용하며 무조건 써내려 가기도 한다.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아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도, 그저 담담히 써내려가야하는 사람, 그게 작가다.
나 같은 초보, 하수들은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소재를 구하다가 어떤 계기로 작으나마 글감이 떠오르면 그때서야 쓴다. 그러니 몇 달간 한 글자도 못 쓰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날 때 몰아서 써버리고는 소진돼기도 한다. 그나마도 쓴 글에 감지덕지하며 고칠 생각을 못하고 서둘러 공개해버린다.
가루를 치고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다. 등단한 사람들, 이미 책을 낸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 소위 작가라고 이름 붙은 사람들만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아니어도 자기 삶의 현장에서 누구나, 아무나,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써서 작가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브런치가 작가라고 불러줘서 작가인 것도 아니다. 이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작가다. 먼저 글을 쓰고 있느냐 아직 시작을 안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2021년부터 써온 브런치에 150여개의 글이 모였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분량이다. 그나마도 꾸준히 써오지 못하고 썼다 안 썼다 들쭉날쭉이었다. 그래도 2년 간의 역사이기도 하고 삶의 증거이기도 한 의미있는 글들이다. 물론 그 글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가 시작되고 소통이 이루어졌기에 더 소중하고.
소중하긴 하나 솔직히 잘 쓴 글은 아니다.(잘 썼으면 브런치북 수상을 했겠지) 거칠고 서투르고 모자라는 글도 많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 같은 것이, 이전 글들을 읽다보면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간 내가 무슨 대단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닌데도 틀린 점들, 혹은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다르게 쓸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기하다. 조금씩이나마 좋아지고 있다는 방증인걸까?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지지만 글은 쓸수록 좋아진다. 꾸준히, 계속, 오래, 어쨌든 쓰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게 어려워 좋은 글이 안 나오고 있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