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을 했다. 아들 둘의 핸드폰을 수건으로 뚤뚤 감아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버리고, 2박 3일 동안은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명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꿩대신 닭이라고, 아들들은 숙소에서 지구멸망 소식이라도 듣는 것처럼 집중해서 텔레비전을 보더라.) 핸드폰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밥 먹으라고 잔소리 안하는 게 진정한 힐링이라고 생각하며 짧은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나에게 여행은 집을 나서는 것. 집이 아닌 길위의 모든 것이 다 여행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도로 위에서 표지판만 바라보다 돌아와도 좋다. 물론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지만.
그 고장의 유명관광지나 맛집을 찾아보고 역사유적을 돌아본 후, 미술관에 들린다. 지역의 동네 책방을 들러 몇 권의 책을 사고 그 곳의 거리를 여유있게 걸어보는 것이 내가 원하는 여행이다. 그렇지만, 사춘기 두 아들을 모시고 간 여행에서 액티비티나 체험이 없이 걷기가 주로 되는 관광지 돌아보기라거나, 테마파크도 아닌 지루한 미술관은 엄마의 꿈일 뿐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집에서도 가는 책방에 굳이 들러야 할까 싶을 수 있고, 유적은 유튜브로 봐도 충분한데 굳이 가서 볼 거 없다는 식이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게 남편은 "냅둬, 나중에 자기 여자친구 생기면 그때 다니라 그래."라고 쿨하게 말했다. 아니, 걔들은 그렇다쳐도, 나는? 나는 또 언제 여길 와보냐고요. 아쉬웠지만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어 적당히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사진이라도 남겨볼까 싶지만, 사춘기 아들들에게 사진은 순전히 엄마 욕심이다. 예쁜 옷을 입고 정성껏 꾸민 채 예쁜 스팟에서 예쁘게 사진을 찍는다? 어림도 없지. 점퍼 후드를 뒤집어 쓰고 범죄자 마냥 '사진 찍지 마세요' 포스를 온 몸으로 풍기며 걷는 아들을 도촬하다 핸드폰을 뺏기고 사진을 삭제 당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이러니 아이들이 크고나선 가족사진도 제대로 찍어보질 못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예쁘게 세팅된 사진이라거나 막 나와 침이 꼴깍 나는 먹음직스러운 사진을 찍어 본적이 드물다. 허겁지겁 먹고나서야 '아, 사진!'하는 아쉬움에 완식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어찌나 잘 먹는 가족인지 허무해서 다 먹고 남은 사진 겨우 남겼다.
(우육면 집에서 공기밥 두 번 리필하고 짜사이 세 접시를 먹었다. 사장님이 잘 먹는다고 우리 큰아들 어깨를 주물러 주고 가셨...;;;
감성카페에선 아들 둘이서 초컬릿 라떼를 원샷하고는 양이 적다고 컵에 물 부어 마시고는 산책하겠다며 그냥 나가버렸다.. 나 혼자 커피 마시면서 브런치 글들을 읽고 있었다.....
아, 피자 두 판, 파스타, 둘에 샐러드, 음료수 뭐 작은 조각 하나 남기지 않도 다 먹은 사진을 동생에게 보여줬더니 핥아먹었냐고.......;;;
혹시 지저분한 사진을 보고 언짢으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여행 뒤에 남는 것은 내내 먹어서 불어난 체중과 그래도 떠나서 얻을 수 있는 가벼워진 마음이다. 계획을 세세하게 세워서 다니는 가족이 아닌지라 그때그때 보이는 곳에서, 끌리는 곳에서 재미를 찾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찾아간 식당이 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아서, 근처를 산책했더니 없는게 없는 대형 문구점을 발견하고, 각자 원하는 펜과 인덱스, 스티커, 작은 완구들을 사며 즐거워하며 돌아간다, 는 식이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고, 넘어져도 돌을 줍고 일어나는 가족이랄까.
처음에 계획했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돌아왔으니 됐다. 편도 6시간 운전한 남편이 고맙고, 엄마아빠와 같은 공간에서 3일 내내 잘 지내 준 아들, 내내 재잘거리고 같이 대화하는 아들이어서 감사했다. 형제가 싸우지 않고, 부부간에 다투지 않고 서로 웃으며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다음에도 또 넷이서 함께 다녀오고 싶다. 어떤 형태이건 어느 곳이건 같이 갈 수 있다면 그 것으로 충분한 여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