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생겼습니다.

by 피어라


열한 살 작은아들(엄마 귀 파주는 바로 그 아들) 담임선생님과 상담전화를 했다. 이야기를 마치려는데, 선생님께서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알고 계시냐고 물으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네? 아니요, 몰랐어요!”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순간 사노 요코 에세이 <자식이 뭐라고>에서 읽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원숭이 같기만 하던 여섯살 짜리 아들이 타인(여자친구)의 내면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고 놀라워하며 깨닫는 장면. 나 역시 천둥벌거숭이 같기만 하던 내 아이가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었구나, 라는 감탄과 기쁨, 놀라움이 먼저 들었다. 뒤이어 놀리고 싶은 마음도 약간 들었고.


저녁 먹고 아이를 무릎에 앉힌 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살짝 귀에 대고 물어보았다.


- 윤아, 좋아하는 여자 친구 있어?

- 어.


아이가 당황하거나 쑥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즉답이 나왔다. 내가 당황할 뻔했다. 평정을 유지하며 계속 물어봤다.


- 언제 부터 좋아했어?

- 그런 날짜를 어떻게 기억해.

- 1학기 부터야, 2학기 부터야?


엄마 생각은 아무래도 전면 등교하고 나서 일 것 같은데, 어린 아이의 시간개념은 역시 다르다. 불과 몇 주 된 일도 아주 오래 전 일 처럼 느껴지나보다.


- 모르겠어.

- 어떤 점이 좋아?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을까, 어떤 사연이 있을까 기대하며 물어보았는데 지극히 당연하면서 엄마의 감성을 깨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수컷이란!!!


- 예뻐.

바로 이어지는 한 마디,

- 내 눈에는.


꺄아아아아아아!!!!! 여기서 엄마는 속으로 로맨스 드라마 한 장면 보듯이 나도 모르게 돌고래 소리가 나왔다. 물론 겉으로는 암시롱도 안 한 것처럼 차분히 이어서 말했다.


-그럼 그 친구를 많이 도와주겠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시크하게 한 마디 한다. 아드님 왈,


-엄마는 남자애들을 너무 몰라.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여자애들한테 장난 쳐. 괴롭혀.

-어머, 그러지 말고,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자기 일 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그 친구도 너를 좋아하지 않을까?


미안하다 아들, 엄마는 이런 고리타분한 말 밖에 해줄 수가 없구나.


- 나는 초등학교에는 좋아만 하고 사귀는 건 안 할거야.


여기까지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서 가버렸다.


아, 귀여워라. 귀여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자각한 아들을 엄마는 응원한다!!

하지만 부디,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몰라 괴롭히는 것만은 참아다오.

그 당부를 하기 위해 내일 밤 또 자리(!)를 만들어야 겠다. 후훗.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자 셋과 떠난 여행이란 무슨 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