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차이기만 한 어느 연애에 관하여

너의 눈길 : 2011년생의 연애사

by 피어라

우리집 작은 아들.

2011년생, 토끼띠,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13살 초등학교 6학년 남자어린이는 4학년 때부터 연속 3년, 고백하고 채인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아이는 아니고 매년 반에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생기나본데, 그 마음을 꽁꽁 숨기지 않고 있는 티 없는 티를 다 내나봅니다. 선생님은 물론 주변 친구들도 다 알고, 당사자 여학생도 아는 상황을 만들어요. 그러다 친구들이 고백하라고 바람을 넣으면 어쩌니저쩌니 하다가 진짜로 고백을 하고, 안타깝게도 거절당해서 여직 한 번도 커플이 되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이 말로는 '모쏠'이라나요.


4학년 때도, 5학년 때도 전력이 있어서 올해도 아이가 학교생활 얘기를 할 때 유심히 듣다가 슬쩍 여자아이들에 관해 물어봤습니다. 좋아하는 애 없냐고.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자주였나봐요. 아이 딴에는 엄마 관심이 부담스럽고 귀찮았던거에요. 그래서 항상 '우리 반에 어떤 애가 있거든. 근데~'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좋아하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심지어 이름이 뭔지도 몰라요. 다만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에게 고백했는데 차였다. 정도만 압니다. (이런걸 소소하게 다 얘기하는 게 엄마에겐 킬링포인트!)


어느 봄날(아닐 수도 있지만 왠지 봄날이라고 하는게 분위기 있으니까요)이었을 겁니다. 자기 전에 누워 소소하게 이야기 나누다가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슬쩍 물어봤지요. 숨길줄 알았는데 의외로 쑥스러워하면서도 엄마 말에 대답은 다 해주더군요. 자기 안에 커져가는 어떤 감정에 대해, 슬며시 쌓여가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윤아, 좋아하는 친구 있댔잖아, 어떤 친구야? 어떤 점이 좋아?

- 몰라아,

.

.

.

.....근데 자꾸 눈길이 가.


세상에, 저 파충류같기만 한 아이가, 천지분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가, 저렇게 예쁜 표현을 하다니요. 자기도 모르게 자꾸 쳐다보게 되는 마음, 계속 보고 싶은 자기 마음을 '눈길이 간다'고 말하더군요. 얼마나 어여쁘고 풋풋한 마음인지요. 그리 말하던 아들은 엄마를 등지고 누워 있었지만 저는 아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습니다. 아주아주 오래 전, 아직 쌀쌀한 기색이 남아 있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강의실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황급히 반대쪽으로 얼굴을 돌리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술에 취하면 제 목소리가 듣고싶다면서 전화하는 동기랍니다. 아이를 보고있자니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칠 것 같으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던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그때 그 친구의 얼굴과 같지 않을까요. 조금 주책맞을 수도 있지만, 아이의 사랑 얘기를 들으면서 간질간질하던 옛 생각도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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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13살 소년의 다음 스토리를 저는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 마음을 앓았는지, 그저 지나갔는지 혹은 아파했는지 그 친구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지, 그런 뒷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상담갔다가 담임선생님에게서 소소한 에피소드는 하나 들었지요. 같은 모둠에 윤이가 관심있어하는 여학생이 있는데, 괜히 툭툭 쳐서 여자아이가 불편해하더라고.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 아들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고 합니다.


역시, 아직 포유류는 아니었던거죠. 좋아하는 마음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 휴먼의 방식으로 표현하려면 멀었네요. 다행히 선생님과 이야기 나눈 후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금은 배운 것 같지요? 관심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입니다. (여자어린이야 미안하고 고마워!)


아쉽지만 이렇게 작은 아들의 초등시절 사랑은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춘기에는 또 어떤 마음의 격랑을 겪고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요? 어떤 사랑을 키워나가게 될까요? 부디 천천히 여물어 가는 이 아이가 무사히 '진화' 하기를 기도해봅니다. (어, 어려우면 탈피라도... 아니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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