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검열의 칼날아래서 살아남기
큰일이다. 고딩 큰아이에게 브런치를 들켜버렸다. 남편에게도, 동생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는 가장 은밀하고 진솔한 나만의 공간을.
퇴근하고는 허리 핑계로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더니 고딩 큰아들이 곁에 와서 엄마가 뭐하는지 들여다 봤다.
"뭐야, 또 브런치해?"
그러고는 어깨너머로 내 닉네임을 봤고(보였고), 기말시험기간이라지만 공부는 전혀 안하고 놀 생각만 하는 아이라 별 생각없이 검색해봤고, 무심코 제목을 봤는데 자기 얘기가 있어 절로 클릭을 했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 글을 읽어버렸다. 그리고는.
"엄마아아아!!!!!"
방으로 뛰쳐들어와서는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에게 항의와 불만을 쏟아냈다.
"부부싸움과 혼수울??? 왜 싸웠는지 기억이 안난다고요오? 내가 기억하는데?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엄마가 잘못했던거잖아요. 진짜 너무하네."
이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잘못을 굳이, 굳이 끄집어내는걸로 시작해서는.
"그리고 내 얘기를 인터넷에 올려요? 아니 이건 내 흑역사잖아! 유도 얘기는 당장 내려요."
라고 협박을 하고,
"와, 아니 큰애는 실험용이고 작은애는 애완용? 엄마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내가 물건인가? 아니 나는 실험용이었어요?"
라고 비아냥거렸다.(무려 올 1월에 썼던 글이다. 어디까지 뒤진거냐!)
"게다가 엄마가 먼저 죽어야돼, 뭐 이런 얘기를 인터넷에 올려요? 자기 아들을 패륜, 사이코패스 뭐 이런걸로 만드려는건가?"
하며 억측과 비난을 쏟아내며 씩씩거렸다.
아들의 반응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고, 아들 얘기를 쓰는 것과 부부싸움 얘기에 대해 구질구질하게 해명을 시도했다. 애초에 단호하고 엄하게 보지 말라고 했어야 하는데 아들에게 말려버린거다.
"T형 부자와 F형 모자, 이런거 까지는 괜찮은데 김장하고 뒷담화하고 이런건 아니지 않나?"
"아니, 너는 엄마 글을 읽었으면 감상을 얘기해야지 뭐 그런 말만 하냐? 읽어보니 어때?"
"일단, 엄마 너무 아줌마 감성이야. 제목에서 호기심을 자극하지를 못하네. 아, 그건 알겠더라, 엄마가 기억력이 좋다는거."
얼러러, 이제는 비평까지 하시겠다? 듣고있자니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당장 닉네임을 바꾸겠다고 얘기하니 이미 계정주소를 다 파악해서 숨겨도 소용없단다. 어, 웃고있을일이 아닌가?
"아들, 난 아빠한테도 이모한테도 비밀로 하고 있는데, 네가 그렇게 엄마 글쓰는거를 보면 안되는거 아냐?"
"왜, 뒤에서 또 내 험담하시려고? 못써서 숨기고 싶으신가?"
아무래도 이 자식의 비아냥은 내 유전자인거 같다. 나와 17년 살면서 제대로 훈련이 되었다.
"나도 너 유튜브 계정 끝까지 엄마한테 안 밝혔잖아. 나도 알아내려고 안하고 궁금해도 참고 너 지켜줬잖아. 그럼 너도 엄마 사생활을 존중해줘야하는거 아냐?"
정색하며 말하니 자기도 뜨끔했던지 표정이 달라졌다.
"알았어, 이해했어. 나도 이제 안 볼게. 근데 나도 브런치 할거야."
그러더니 나가서 브런치 가입을 하고 글쓰는 거를 해보겠단다. 정말 시험공부가 하기 싫었나보다.
도대체 무슨 글을 어떤 꼬라지로 쓰는건지 궁금해서 들여다봤더니 자기가 직접 속에서 끄집어내어 쓰는 글이 아니라 챗GPT한테 물어서 문장을 만들고 있다. 풉, 아서라 아서. 그렇게 써서 되겠냐. 브런치를 너무 만만히 보는거 아니냐. 한마디 해주려는데 아들녀석이 한다는 말이.
"나도 가입해서 엄마랑 나랑 구독자 수 경쟁을 하는거야. 나는 엄마 글은 안 읽고 좋아요만 눌러줄게요."
그러고는 과감히 작가신청을 했다.
하아, 이제는 아들에게 들킬까봐 걱정해야하는건가, 군부독재시절 안기부도 아니고 아들의 눈치와 검열아래 몰래몰래 글을 써야하나, 내 옛사랑 얘기는 이제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고 묻어둬야만하는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아들은 절대로 몰랐을거다. 절망하는 내 안에 '아들아, 글감 하나 던져줘서 고맙다.'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후후후.
아래는 아들에게 검열당한 글들입니다. 어흑
ps 1- 그리고 어제, 지극히 당연하게도 우리 아들은 작가신청 똑 떨어졌답니다. 후후후후
(이 글도 읽어보는건 아니겠죠?? 허업)
ps2- 브런치가 눈치있으면 이런 글은 메인에 떡하니 올려주시라.(아들 약오르게. 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