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는 실험용, 작은애는 애완용이라는 말

by 피어라

3월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큰 아들과 다퉜다. 사실 다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일방적으로 내가 아이를 몰아붙이며 다그쳤으니까.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 가볍게 엄마를 건드린 거라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발로 내 몸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화가 났다. 안그래도 평소 허물없는 관계라는 핑계로 자꾸 선을 넘는 큰아들때문에 신경전을 벌이는 중인데 말이다.


이전에도 몇 번 경고를 했음에도 또 발로 내 몸을 건드리는 순간 폭발했다. 나를 만만하게 여겨서 내 경고를 무시하나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급발진'과 '억까'의 연속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불쾌함과 무시당함의 연타였다.


분노한 나는 손바닥으로 아들의 다리를 몇 번이나 내리쳤고, 아들의 만류에도 진정이 되지 않아 거친 말이 튀어나왔으며 몸으로 부딪히기까지 했다.(매우 순화해서 정리한 표현이다......)


그렇게 감정이 부딪히며 여기저기 상처들이 튀어나가고 서로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흥분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들을 혼낼때마다 언제나 그렇듯 진흙탕같은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왔다. 사촌기 큰 아들과 싸우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실망해서 더 마음이 힘들다. 아들을 좀 더 이해해주지 못하고 아들에게 내키는대로 함부로 대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금새 미안해 할 것을 좀 더 참지 못하고 폭발한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다시 화가 난다.


이런 날이 오늘 만이 아니다. 아이가 자라며 자꾸 부딪히고 내 주관을 강요한다. 엄마의 야단과 호통을 쏟아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다가가 실없는 말로 아이 기분을 풀어주려한다. 일방적으로 매섭게 혼냈으면서 먼저 사과를 하는 태도가 교육적으로 좋지 않을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반복한다.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화난 엄마를 보고 눈치껏 침대로 피신한 작은 아들 옆에 조용히 누웠다.


"형한테 화내서 속상해. 엄마가 좀 안아도 될까?"

아이의 몸통에서 온기가 전해진다.

"엄마가 혼낸게 미안하긴한데, 엄마도 많이 화났어. 그래서 혼냈는데, 형도 속상할 거 같아. 어떻게 하면 안 혼낼까?"

"화내지를 마."

"근데, 화가 나면?"

"혼내지를 마."

이게 무슨 말인가? 자기가 말하고도 말이 안된다 싶었는지 작은 아이가 피식 웃어버린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 그러면 좋은 수가 있다. 형이 엄마 말을 안들을 때마다 벌금을 받아."

"벌금? 그러면 너도 공부 안하고 때부리면 벌금 내면 되는거야?"

"아니, 그건 좀 그렇네...아 모르겠다."

하더니 일어서서 화장실에 가버린다.


별거 아닌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얼어붙은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큰 아이에게 담담하게 말을 걸었다. 다시는 안그랬으면 좋겠다고, 조심해 달라고. 뒤돌아서 저녁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제떡볶이를 주문했다.



아이 마음에 상처가 남았을지, 혹시 별거 아닌 저녁으로 흘러갔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처음 엄마를 하는거라는 변명과 핑계가 몇 살까지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오늘도 내 모자람을 아들의 말랑한 마음에 기댄다.


이럴때 '첫째는 실험용이고 둘째는 애완용'이라는 우스갯 말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자녀를 두고 실험용과 애완용이라니. 첫째에게 상처가 되고 편애의 증거가 되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족한 부모의 자조라고 생각한다. 처음 아이 키우는 부모가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실패도 하며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실험용이라 말하고 그러다 쌓인 경험이 작은 아이에게 여유를 갖게되는 상황에 대한 뼈아픈 농담으로 뱉어낸 말. 자녀가 독립할 때까지 좌충우돌하며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는 부모에 대한 슬픈 자화상이자 비소가 아닐 수 없다. 오늘처럼 여전히 좌충우돌하는 엄마지만 부디 실수투성이 큰애엄마에서 허용적인 작은애엄마 사이의 거리가 많이 멀지 않기를 바래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