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따위 겁나지 않아!

by 피어라

며칠 전 올리브영 세일 때 생리대를 샀다. 예전처럼 왕창 쟁여두지는 않고 필요한 만큼 몇 팩만 샀다. 얼마나 더 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리대를 살 때마다 다음 달까지 쓸 수 있으려나? 이번에 산 것들을 다 못쓰고 남지 않으려나? 이런 소소한 고민을 한다. 곧 폐경이 될테니까.


보통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 쯤 폐경이 온다고 하니, 나는 언제 생리가 끊겨도 이상할게 없다. 전보다 양이 줄긴했지만 아직 폐경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주기가 약간 불규칙하기는 해도 이번 달에도 생리를 하고. 태아시절부터 만들어진 난포들이 아직 내 몸에 남아있나보다.



첫 생리가 시작된 14살부터 지금까지, 임신기간을 제외하고도 몇 십년 동안이나 생리를 했다. 피임시술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일 년 열두 달, 매달 5일 이상, 대충 어림해도 내 인생에 1/6은 생리를 하고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껏 사용한 생리용품 가격도 만만찮다. 딸 셋을 키우는 친구는 항상 박스로 주문해서 채워두는데, 금액이 상당하다 했다.


주변에 친구들 중에 이미 폐경이 온 친구도 있고, 시술을 하거나 치료로 인해 생리를 안하는 친구들도 있다. 얘기 들어보면 하나같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고 한다. 불편한 배란통이나 뱃속을 뒤집어 물에 넣고 씻어버리고 싶은 생리통, 한 여름에 땀범벅으로 굴을 낳는 찜찜함을 벗어버리니 살 것 같단다. '너도 겪어보면 알거야', 라며 은근 자랑도 한다.


나도 어서 마무리 짓고 싶은데, 동시에 뭔가 아쉬운 마음도 있다. 노화의 증거라거나, 여성성의 상실 같은 이유일수도 있고,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아직 겪어보지 못했으니 막상 닥치면 지금과 다른 마음일 수도 있을테고. 곰곰 생각해보니 한 시절을 매듭지을 준비가 덜 되어서가 아닌가 싶다. 몸의 노화와 마음의 성숙이 같이 가지 못하는데서 오는 괴리감 같은 것 말이다. 여전히 다스려지지 못한 내 마음 때문에 좀 더 어른이 되어야한다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떼를 쓰는 것 같다.


폐경(閉經)이라는 단어 대신 완경(完經)이라는 용어를 쓰자는 얘기들도 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생리를 완결짓는 혹은 완성한다는 의미는 좋지만, 동시에 지속중인 지금을 미완으로 보는 시각이라고 생각이 든다. 지나친 감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생리는 그 자체로 완성이다. 끝냄으로 완성짓는 것이 아니다. 해서 완경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지역의 여성청소년들에게 생리용품 지원을 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저소득층 중심이었는데,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만 11세에서 만 18세 까지 모든 여성청소년들에게 최대 월 13,000원을 지원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생리용품 구매가 부담스러웠던 여성청소년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다.


포탈 사이트에서도 종종 생리용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 후원광고가 뜬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던,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았던 소녀들의 고통, 나 역시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다. 폐경을 앞두고 있는 요즘, 문득 소녀들의 생리대 이야기가 떠올랐다.


폐경이 오면 더이상 나를 위한 생리대는 사지 않아도 된다. 그럼 그 금액만큼 매달 생리용품 구입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친구들에게 후원을 하면 어떨까? 한 명의 여자가 생리를 끝내고 새로이 생리를 시작하는 여자에게로 마음을 전하는거다. 내 아이가 태어나고 먼 몽골의 아이를 후원했던 때처럼.



마음을 정하고 나니 약간의 설레임이 생긴다. 폐경에 대해 막연하게 불안해하기 보다 즐겁게 기다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울지언정 속상해 하지 말고, 폐경 전까지 기쁘게 생리하고, 폐경을 맞으면 신나게 또 그 다음을 맞이하자. 언제 폐경이 될지 모르지만, 언제가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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