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좋아합니다. 목살도 항정살도 갈매기살도 좋아합니다. 수육보쌈족발 가리지않습니다. 갈비는 없어서 못먹습니다. 곱창도 비싸서 자주 못 먹을뿐입니다. 익히지 않은 육회는 잘 못먹지만 천엽은 참기름장 찍어 잘 먹습니다. 양고기, 양꼬치도 쯔란 듬뿍 묻혀가며 먹습니다. 네, 고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지금도 먹고싶습니다.
불판 가득 붉은 고기를 올립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글지글 지방이 녹아 흐르며 고기가 익어갑니다. 한 번씩 고기를 뒤집으며 술 한 잔을 먼저 마십니다. 술을 마시기 위해 고기를 먹는지 고기를 먹기위해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적당히 익어가며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풍기면 참을 수 없는 허기에 김치라도 한 조각 씹으며 기다립니다. 이제 고기가 다 익었습니다. 상추 위에 고기 한 점, 마늘, 고추, 양파를 곁들여 싼 뒤, 한 입에 욱여넣습니다. 역시, 이 맛입니다.
저는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주의자입니다. 정확히는 육식과 채식을 고루 좋아하는 잡식주의자겠지만, 어쨌든 '남의 살'을 좋아하고 며칠 먹지 않으면 계속 생각이 납니다. 배달앱 주문 내역을 보면 차례로 치킨, 족발, 순대국, 감자탕, 닭발, 횟집이 보입니다. 이런 제 음식 취향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자연스레 알고 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글로 드러내는 건 처음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저와 반대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을 흔히 채식주의자, 비건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비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비판적인 의견을 지녔거나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나면, 오히려 비건을 응원하는 쪽입니다. 차별적인 시선속에서도 자신의 지향을 지켜나가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비이성적이고 강요하는 채식은 별개의 문제이니 논외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비건'이라는 이름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비겁해지게 만듭니다. 고기를 참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 앞에 정의를 내다버린 인간처럼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런 감정을 '열등감'이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육즙과 육질에 사로잡힌 내 모습과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하는 게으름까지, 비건은 너무 많은 나를 들춰냅니다. 공장형 축산시스템,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 생산과정 등의 문제점을 알지만 파고들지도 못하고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채식에 관한 글을 보더라도 읽지 않고 넘어갑니다. 마치 못 본 것처럼, 비겁하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천할 수 없어서, 여전히 고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비건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우리 사회 대다수는 채식주의자에게는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요구하지만 육식주의자에게는 자신의 취향을 설명하라고 다그치진 않습니다. 그저 '식탐'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저는 그 사실이 고맙습니다. 올바름과 태도의 문제가 아닌 욕망과 욕구의 문제로 바꿀 수 있어서요. 설명할 수 있는 논리 따위 없어도 됩니다. 그저 먹고싶다는 말 하나면 됩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베이컨계란볶음밥이었습니다. 김치와 두부, 우엉조림으로 반찬을 곁들이자 아들이 '고기반찬'을 찾습니다. 생각해보니 고기를 좋아하게 된 건 아이들 밥상을 차리면서 부터인 것 같습니다. 퇴근하고 콩나물, 시금치, 감자, 당근 손질하는 것 보다 바로 구워서 김치와 같이 내놓기만 하면 아이들은 밥 한 그릇을 다 비웠습니다. 한 단을 사서 데치면 겨우 한 줌 되는 채소, 씻고 껍질 까고 채썰고 볶아야 먹을 수 있는 채소, 여러 단계 손질을 거쳐야 먹을 수 있는 채소 보다 고기가 훨씬 간편했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 복잡하고 어려운 단계를 거쳐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을테지요. 힘든 결정을 내린 비건을 존중합니다. 아마 꼭 그만큼의 부끄러움으로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기 좋아한다는 얘기를 주절대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