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남편과 함께 창고형 할인매장에 다녀왔다. 언제나 그렇듯 여기저기 다니며 이것저것 담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그만큼 돈도 후욱 빠져나간다. 소비와 지출을 줄이려고 하는데도 가족들이 서로 먹고 싶은 것을 고르면 카트가 가득 차버리니 참 고민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큰아들 유도가기 전에 얼른 밥을 먹어야해서 해서 간단히 저녁거리를 사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고기베이크와 조각피자를 포장했다. 아니나다를까, 집에 도착하니 큰아들이 배고프다고 징징댄다.
먹거리들을 다 정리하고 식탁에 넷이 앉아 음료와 베이크를 먹었다. 한 개를 다 먹고 두 개째 호일을 벗기던 굶주린 큰아들이 볼멘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어유 도대체 몇겹을 싸놓은거야."
그러자 남편과 작은 아들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두 겹."
아니, 이 사람들아, 지금 몇 겹으로 쌓였는지 궁금하다는 말이 아니었잖아요. 얼른 먹고 싶은데 겹겹이 쌓여있는 바람에 벗겨내고 먹기 힘들다는 불평이잖아요.두 부자의 대답을 듣고 푸웁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이고, 영락없이 T고만 T야. 누가 T부자 아니랄까봐."
두 부자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표정으로 자기 몫의 베이크를 먹기만 할 뿐이었고 극 F인 나는 이 상황이 그저 웃기기만했다. 몇 겹 쌓여있냐고 하니까 눈에 보이는대로 '두 겹'이라고 답했을 두 남자의 머릿속을 짐작해보며 또 한 번 공감받지 못하더라도 상처받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결혼이나 육아나 상대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가수 양희은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주 만나지 않는다며, 별과 별 사이처럼 바람이 통해야한다고 말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나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통하는 말이다.
오래 전 처음 연애할 무렵에는 상대와 내가 완전히 겹쳐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두 개의 원이 서로 만나 교집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포개어져야한다고 믿었다. 상대와 내가 서로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안타깝게도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 후에도 몇 번의 사람을 서툰 사랑의 방식때문에 떠나보내야했다. 그렇게 나도 상대도 상처받은 경험을 통해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 말고도 다른 사랑의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이 통할 수 있을만큼의 거리, 그 거리만큼의 여유, 그 여유만큼의 이해가 더욱 사랑을 깊게한다.
더운 날 바로 맞닿아 있는 살들은 마찰과 습기 때문에 짓무르고 땀띠도 쉽게 생긴다. 사랑도, 사람도 너무 붙어있으면 탈이 난다. 겹쳐진 원이 아니라 교집합을 만드는 원을 만들었다면 거친 연애가 아니라 좀 더 부드러운 연애를 했었으려나. 앎과 실천은 다른거라고 그런다고 성숙한 사랑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조금 그 시절의 나와 구남친들에게 미안하다. 더 많이, 더 깊게, 더 오래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니 공감형이건 이론형이건, MBTI가 T이건 F이건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으니 감사하기로 했다. 그게 내가 당신들을 사랑하고 품어줄 수 있는 이유라고 말이다.
"형은, 몇 겹으로 쌓여있는지 궁금한 게 아니고 포장 벗겨내는게 귀찮다는 뜻으로 말한거야. 좀 공감해줘라."
드라마 독백같은 엄마의 해설을 듣더니 작은 아들이 자기는 T라서 그렇단다. 큐티.
'네가 큐티면 나는 프리티'라고 한 마디 하자마자 두 아들의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귀로 흘려보내며 베이크를 씹어 삼켰다.
적당한 거리.
쓸쓸함이 아니라 감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