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요일 점심 시간 식탁에서 나눈 대화
얼마전 인터넷 게시판에서 '가이와 부금'의 애절한 사랑에 관한 글을 읽었다. 양반여인과 천민남자의 신분과 시대와 생사를 초월한 사랑이야기였다. 평화로운 일요일, 식구들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던 중에 어쩌다 이 얘기를 꺼냈다. 남편과 아이는 처음 들었다면서 집중해서 들었다.
신분을 초월한 안타깝고 처절한 사랑얘기의 백미는 마지막에 가이가 자신을 부금보다 나중에 처형시켜달라는 부분이었다. 먼저 처형당한 부금의 시신을 자신의 손으로 수습하고 잘 묻어준 뒤에 세상을 떠나는 여인의 모습. 치즈 돈까스와 파김치를 안주 삼아 맛깔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탓이었을까, 남편이 뜬금없이 한 마디했다.
"아빠는 엄마보다 먼저 죽을거야. 괜히 아픈 나 돌보느라 가족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남편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내가 먼저 죽을거야. 당신 죽고나서 뒷수습을 어떻게 하라고, 난 못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이 문제가 아니라, 사후에 처리해야할 온갖 서류들, 이전, 변경, 말소 등등의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매우 귀찮고 번거롭고 신경써야해서 하고 싶지 않다는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진짜로 투병중이라거나 병구완중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서로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내가 먼저 죽네, 네가 먼저 죽네 둘이 말이 오가는데 작은 아들이 판결을 내렸다.
"엄마가 먼저 죽어야 돼"
단호한 아들의 이야기에 엄마와 아빠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냐고 묻기도 전에 아이가 말을 이었다.
"엄마는 엄청 잘 울잖아. 아빠가 먼저 죽으면 엄마가 맨날 울거아냐. 나 그거 못 달래줘. 그니까 엄마가 먼저 죽어야지."
'아이고, 아들아 엄마가 슬퍼할까봐 걱정됐어?' 라고 물었더니, 쑥쓰러운듯 '아니, 달래기 싫어서 그러지' 라고 답하고는 무심히 자기 몫의 밥을 먹는다. 표면적인 문장은 거칠지만 그 속에 담긴 뜻만은 다정한 아들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더라도 그렇다고 해두자. 우리 아들은 아직 파충류니까.
(우리 가족 이야기가 혹시나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분들께 상처나 아픔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