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도 춤 못 추게 하는 칭찬

by 피어라

지난 연휴, 간만에 집안일을 좀 했다. 옷장 위에 쌓아뒀던 옷가지들, 냉장고 안에 방치된 먹거리들, 여기저기 박혀있는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을 조금씩 치워나갔다. '덜 완벽하고 내 몸 덜 힘들게'가 모토인 게으른 주부답게 천천히티 안나게 치웠지만, 그래도 집안일이라 꽤 많이 버둥거려야했다.


어쨌든 평소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리를 마치고 쉬는데 남편이 싱크대를 한 번 둘러보더니, "잘했어. 앞으로도 이렇게 해." 한다.


화악, 순식간에 마음이 100일 동안 설탕액에 절여진 매실처럼 쪼골쪼골해지고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반박자도 안 쉬고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입에서 뛰쳐나갔다.


"잘 했으면 잘 했다고, 내가 한 일에 대해 칭찬만 하라고. 거기에 당신이 바라는 기대를 얹어서 나한테 건네지 말고. 지금 나한테 매일 하라고 시키는거야 뭐야."


남편은 별 생각없이 한 말일텐데 날 서게 받아들여진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기억때문이다.


그날은 어버이날이었다. 밑으로 세 살, 다섯 살 터울의 두 동생과 함께 일 끝내고 오실 부모님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어버이날이니까, 오늘 정도는 엄마 아빠 오시기 전에 집 청소를 해보자고 동생들을 설득해서 어설프게나마 방청소를 마쳤다. 편히 쉬시라고 안방에 부모님 이불까지 깔아놨다. 일 마치고 돌아오실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이윽고 밤이 되고,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나는 신이 나서 동생들과 함께 현관으로 달려가 외쳤다.

"엄마, 아빠, 내가 청소도 했고요, 이것 보세요. 방에 이불도 깔아놨어요. 씻고 바로 주무시라고요!"


큰소리로 내가 한 일을 자랑하며 엄마아빠 손을 잡아 끌어 방으로 들어갔다. 정리된 방과 펼쳐진 이불을 보신 부모님 좋아하시며 나를 칭찬해주길 기대했다. 평소 꾸중만 듣던 큰딸에게 오늘은 다정한 칭찬의 말을 해주시겠지,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실지도 몰라,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자 어서 제게 빛나는 칭찬의 말을 해주세요, 저 잘했죠!' 상기된 표정으로 부모님을 바라보던 그때, 아빠가 말했다.


"어, 어 그래, 잘했다. 참 잘했는데, 내일도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청소도 하고 이불정리도 하고."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가고, 반짝이던 눈과 마음은 물 뿌린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사그러들었다. 순수하게 오늘 내가 수고한 마음을 기뻐해주시기를, 내 행동을 칭찬해주기를 바랐지만, 부모님에게서 나온 말은 기대와 달랐다. 더 잘해라, 내일도 해라. 매일 이렇게 하렴. 늘 하던 잔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어린 마음이긴 하지만, 그때 내가 한 생각은 '칭찬들으니 기뻐'가 아니었다. '다시 하나 봐라.'였다. 내가 뭘 해도 더 잘하라고 요구하는 부모님의 말에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오늘만의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던 거지, 매일 집안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내가 하나를 하면 두 개, 세 개를 더 하라고 채찍질 하시는구나. 그렇다면 아예 하나도 하지 말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여전히 나는 집정리를 하지 않았고 또 부모님의 꾸중을 들어야했다.


남편의 말도 같은 의미였다. 정리 잘해서 좋아, 로 끝났으면 충분했을텐데, 매일같이 이렇게 정리하라는 요구가 더해지자 더 하기 싫어졌다.


많은 교육학자들, 심리학자들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칭찬의 기술', '칭찬할 때 주의해야할 점', '칭찬 제대로 하는 법'등으로 조금만 검색해보면 유튜브나 블로그에 어떻게 칭찬하면 좋은 지 관련된 글과 영상이 우수수 쏟아진다. 예전에는 칭찬에 인색한 부모의 양육태도를 문제삼았다면, 요즘은 칭찬으로 부모가 원하는 행동교정을 이끄려고 하는 부모의 욕심을 우려한다. 칭찬도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칭찬 그 자체가 목적일 것, 칭찬에 평가를 담지 말 것 등 자녀를 키우는 부모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적용할 만한 조언들이다.


40년 전 내 부모님의 말이나 오늘 남편의 말은 칭찬이라기보다는 칭찬을 가장한 요구였다. 마음에 상처를 주고 관계를 해칠 수도 있는, 나쁜 칭찬. 좋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들 수 있지만, 잘못된 칭찬은 새우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ps - 빨간 새우 사진을 보니 소금구이가 먹고싶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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