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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23. 2023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물건을 훔쳤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오후 업무 중, 낯선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학교 후문 바로 앞에 위치한 무인아이스크림 가게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분은 내게 000 이가 우리 반이 맞는지, 내가 담임교사인지 물었다. 무슨 일이시냐고 되묻자, 000가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한다. 한두 번, 소액이었으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그 정도가 아니라서 연락한다고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하셨다.


먼저 많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셨을 사장님에게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아이 정보는 어떻게 아셨는지,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몇가지 사실확인 후 사장님 연락처를 받았다. 통화를 끊고 바로 아이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차저차한 사정을 말하고 사장님 번호를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내 예상과 달리 별다른 대꾸도 없이, 부정이나 탄식도 없이, 내게 한 마디 되물어보지도 않고, '네, 알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치고, '이게 맞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혀 예상못한 아홉 살 아이의 소행도 기가 막혔지만, 아이의 절도 소식에 덤덤한 어머니도 의외였다. 이후 퇴근할 때까지 아이부모님이나 사장님에게 연락이 없었다.


다음 날 수업을 마치고 아이와 상담을 했다. 연구실에서 나와 마주 앉은 아이는 어제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말했다고 했지내게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언제 그랬는지, 몇 번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했고, 그러면 안되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CCTV에 찍힌 아이의 행동을 사장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이의 말과 전혀 다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사장님께 사과했느냐고 물었다.

엄마가 집에 있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와 아빠만 갔어요.

엄마와 아빠는 네게 뭐라고 하셨니?

아이는 고개를 갸웃할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이의 태도는 내 예상밖이었고, 아이를 대하는 내 태도도 예상을 벗어났다. 직접 보지 못해서 그런걸까?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꺼내 먹고, 매장 안을 마구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버리고, 아무 장난감이나 꺼내서 가지고 놀았다는데, 화가 나거나 안타깝지가 않았다. 냉정함과 객관, 무관심과 조금씩 닮아있지만 무엇과도 같지 않은 그런 심정이었다.  




아이들을 만나면 늘 도덕과 질서, 규칙과 정의에 대해 얘기한다. 실수를 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꾸준히 가르쳐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마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그렇게 하고 있을거다. 아이가 잘못을 했다면 되풀이하지 않게 책임질 수 있게 가르치면 된다. 제대로 사과하고 옳지 못한 것을 배우고 반복하지 않도록 울타리를 든든히 해주면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가정에서의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둑에 난 구멍을 내가 메꿀 수는 있지만, 둑 자체를 허술하게 지었다면 언젠가는 터지고 만다. 작은 구멍 한 두개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먼저 부모의 가르침이 기초가 되어야하는데, 그게 허술하면 아무리 겉을 칠하고 꾸며도 순식간에 안에서부터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다. 그건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8년 전에도 나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 학교 앞 문방구점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반 아이가 자신의 문구점에서 고가의 색연필을 훔치려 했다고. 아이는 사장님의 채근에도 부모의 연락처를 말하지 않고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타일러서 돌려보내려했는데 괘씸한 마음에 신발주머니에 써있는 학년 반을 보고 학교로 전화하신거였다.


전화를 끊고 문방구로 뛰어갔다. 아이는 어쩔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 옆에 서서 아이보다 더 깊이 고개 숙여 사장님께 사죄했다. 물건을 가지고 나가려다 걸린거라 따로 배상금액은 필요없었지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사장님은 목소리를 높이셨다. 그래도 어린 학생이니 선생님이 잘 가르치시라고, 다음에도 걸리면 그때는 경찰서로 바로 연락하겠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거듭 사과를 드리고 아이와 함께 문방구를 나왔다. 햇살이 제법 뜨거웠고 어디선가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허기가 몰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갓 만든 빵을 진열하고 있는 빵집이 보였다. 아이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우리 빵 먹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빵과(소보로 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빵을 하나씩 골라들고 운동장 구석 그늘진 곳에 앉았다. 방금 나온 따뜻한 빵 덕분에 굳어진 마음도, 움츠러든 속도 조금씩 편안하게 펴졌다.  아이와 다정하게 어깨를 마주하고 앉아 한 조각씩 빵을 뜯어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아이는 부모의 이혼을 원망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신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했다. 일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엄마와 친구들의 엄마를 비교하며 어른들에게 반항했고, 자신의 욕망만큼 인정해주지 않는 친구들에게 거칠게 대했다.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욕망을 어쩌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히는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물건을 훔쳤음에도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아플뿐이었다.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며 아이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율해주고 싶었다. 관심받고 싶어하는 아이 마음에 내가 먼저 다가가려했다. 아이에겐 기댈 언덕이 필요했고 나는 기꺼이 그 언덕이 되길 원했다.


묵묵히 빵을 먹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에게 말할거에요?"

다급한 목소리로 한 번만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했다. 엄마가 알면 맞는다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며 굳은 약속을 했다. 나는 속는 셈 치고, 이번 한 번만, 엄마에게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나와 비밀을 공유했다. 아이보다 내가 더 아픈 것 같았다.




그때는 그랬다. 학급 아이들의 개인사정과 가정상황도 파악하고 있었고, 교사도 부모를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회와 사람들의 생각이 다 변했다. 학교현장도 부모들도 아이들도 교사도 다 바뀌었다. 최소한의 개입, 최소한의 관계, 최소한의 거리 유지, 이게 요즘 초등교육현장의 모습이다.  아이의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훈육도 조심스러워야하고, 단체생활을 위해 필요한 규칙은 자율이라는 이름 앞에 무장해제되며, 아이가 느끼는 정서적인 압박은 학대라고 불린다. 이런 현실 앞에서는 최소한의 감정으로 아이와 교사간의 간격을 벌려야 한다. 사회와 현실 핑계라고 보여도 할 수 없다. 그래야 교사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많이 아파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하는 최소한만 하고자했고 건조하고 사무적이 되려고 노력했다. 8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간격이 벌어져 있는걸까.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등교해서 즐겁게 생활한다. 나도 모르게 눈으로 아이를 쫒고, 평소보다 유심히 아이 표정을 살핀다. 자꾸 아이를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고 그때마다 다시 되뇌인다. 여기까지가 내 몫이야, 더 다가가지마. 




덧붙인 이야기


고백하자면, 8년 전 엄마에게 비밀로 했던 그 아이는 한 달 뒤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훔치다 걸렸다. 엄마에게 연락을 취했다. 엄마는 피곤과 수치가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분노와 하소연을 마구 섞어 쏟아냈다.

그 날 아이는 엄마에게 맞았을까? 다시는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았을까? 아이의 다음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듬해 나는 학교를 옮겼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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