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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25. 2023

소소한 관찰자

일상


#1.

오늘 아침 출근길에 한 초등학생을 만났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핸드폰으로 계속 통화를 하며 바쁘게 엘리베이터에 탔다. 공동현관 입구를 나설 때까지 귀에서 핸드폰을 때지 않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슬쩍 내려보는데,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몇 미터 앞에 똑같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두 아이는 서로 마주본 후에야 웃으며 폰을 껐고, 얘기를 주고 받으며 나란히 걸어갔다. 연애중인 청춘남녀라해도 믿을 것 같았다. 하교할 때도 사이좋게 함께 오겠지?



#2.

동네에 작은 실개천과 그 옆으로 긴 산책로가 있다. 근처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만보걷기도 하고, 조깅도 하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로로 연결되는 입구는 s자 모양이 두번 반복되는 길고 구불한 길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돌아가기보다 잔디 위로 가로질러 더 많이 다닌다. 나도 가끔 길이 아닌 곳으로 다니는데, 어느새 길 아닌 길이 만들어졌다. 한 두 사람이, 한 두번 걷는다고 저렇게 될까. 얼마나 사람들의 발길이 단단하고 무거우면 작은 풀 하나 나지 못하고 흙이 드러날까.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게 하는 산책로의 조급한 발걸음이 내 눈에 인간의 이기심처럼 보인다. 마침 읽고있는 책이 <지구끝의 온실>이라 더 그럴까.

 


#3.

요며칠 지나치게 말을 많이했다. 독서모임 때도 텐션이 올라 신변잡기들을 먼저 나서서 털어댔고, 메이커수업 참여 중에도 안해도 될 얘기들을 쉽게 뱉었다. 직장에서 개별적인 만남에서도 안해도 상관없는 얘기를 꺼내다 오늘 수업 협의 시간까지 철없고 뻔뻔한 아줌마 역할을 자처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매번 자리가 파하고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어설픈 E에게 모임이 끝나고 남는건 자괴감이다. 입을 닫아버리면 좋겠는데, 그 순간의 어색함을 못 견디고 먼저 나서서 말을 만드는게 문제다. 이때를 넘겨야하는데 입을 다무는게 왜 이리 힘든걸까.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게 눈꺼풀이랬다. 천하장사도 감기는 눈꺼풀은 못 들어올린다고. 입술도 그런거 같다. 닫아도 닫아도 자꾸 열린다.




#4.

어제 저녁, 평소 생선을 잘 먹지 않던 작은 아드님이 고등어구이를 먹으면서

"나도 이제 생선의 맛을 알게 됐나봐." 이러더군요.

기분이 좋아져서 '또 구워줄께.'했더니,

"엄마, 생선 쿨타임이 아직 안 돌아왔거든~치킨도 쿨타임이 있고, 피자도 쿨타임이 있는거라고. 센스 없어."

오호, 그런거구나.

그럼 쿨타임이 제일 짧은 건 뭔지 물어봤어요.

"초밥."

언제 먹어도 좋대요. 그래서 오늘 저녁엔 초밥먹을지도 몰라요.

(초밥은 좋아하지만 생선은 싫어하는 모순투성이 작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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