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하는 변태와 똥이 된 아들

by 피어라

가끔(아마도 자주) 남편이 설거지를 합니다. 가정적이거나 가사노동에 평등을 추구하는 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쌓여있는 그릇을 처치하는 것 뿐입니다. 여튼, 남편은 설거지할 때 나름의 룰이 있습니다.


우선, 윗도리를 벗습니다. 옷에 물이 튀는 게 싫어서요. 앞치마를 해도 젖을 때가 있어서 그런다고 하네요. 배가 나왔으니 당연한 물리법칙입니다. 다음에 얇은 면장갑을 낍니다. 손이 시린 것을 막기도 하고 고무에 직접 닿지 않게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섭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빨간 L 사이즈 고무장갑을 겹쳐 낍니다. 이 모든 과정은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됩니다.

마지막으로 제 취향인 자잘한 꽃무늬가 박힌 다이소 앞치마를 두르면 설거지 준비가 끝납니다. 아, 허리끈은 귀찮아서 안 묶고 목에 걸기만 합니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지나가던 큰 애(17세. 남.)가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말합니다.

- 아빠, 은근 변태같아요.


아, 그렇습니다. 이 차림새, 꽤나 외설스러운건가요?

(그나저나 아들, 넌 왜 그런 생각을...?)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맥주 한 캔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아이(13세.남)기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옆에 풀썩 앉으며 물었습니다.

- 엄마, 나 낳을 때 힘들었어?


너 낳을 때 힘들었냐고? 캔을 내려놓고 3박 4일은 떠들어댈 기세로 외쳤습니다.


- 그럼, 완전 힘들었지! 죽을 뻔 했지!!! 엄청시리 힘들었지!!!!!

- 나도 지금 죽을 거 같애. 나도 똥 싸느라 죽을만큼 힘들었어. 나도 똥을 낳았다구

- 그래? 그럼 너는 이제부터 내 똥이다.


엄마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똥을 낳았으니, 고로 나는 똥을 낳은....

완벽한 삼단논법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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