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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30. 2023

글은 우리를 어디로 끌고가는가

그때 나는 여덟 살, 어제 이후로 만나이가 시행됐으니 그대로 하자면 여섯 살 밖에 안된 나이였다. 사거리 주택공사 아파트로 전세 이사하던 날이었다. 지금같은 포장이사도 없던 때라 부모님은 며칠 전부터 짐을 싸느라  바빴고 이사 당일엔 몇몇 친척들까지 모여 함께 짐을 날라야 했다. 층계를 오르내리며 장농이며 짐들을 옮기는 바쁜 와중에 나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어른들 중 누군가 나에게 근처 놀이터에 가서 놀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 간 낯선 동네에서 바로 친구들과 함께 노는 주변머리가 없던 나는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워야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낮의 놀이터를 지나 아파트 옆 잡목 틈, 여기저기 피어있는 들꽃 사이, 잔디라고 보기엔 센 풀들 위로 지나는 작은 곤충들 따위를 따라가다보니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혼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여기는 어디지?

이사 온 첫 날 나는 이렇게 미아가 되는구나 싶어서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둘러보아도 다 똑같아 보이는 네모난 아파트들 뿐이라 어떻게 우리집을 찾아야할지 알 수 없었다. 막막한 감정이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버석하게 밀려들때 쯤,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빠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바로 옆 길에서 아빠가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헤맸다고 생각했던거지, 사실은 몇 미터 나가지도 않았던거다. 눈 앞의 아파트 에서 ㄱ자로 꺽으면 보이는 동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길을 잃었다는 것도, 헤매다 울뻔했다는 것도 말하지 않고 나는 마치 원래 그 길로 우리집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처럼 아빠에게 뛰어갔다.


길은 그렇게 찾아지기도 한다.


브런치를 지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애초에 글을 쓴다고 말한 적도 없다. 가족한테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내가 쓰는 글에 관심이 없고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 서운한건지 고마운건지 모르겠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노라면 작은 아들은 자기가 게임하고 싶은데 엄마때문에 못 쓴다고 투덜대고, 큰아들은 엄마가 중2병 같은 아줌마 감성으로 허영과 허세에 쪄들까봐 근심을 가장한 놀림을 퍼붓는다. 그러니 아들에게도 내 글을 보여주고싶지 않다.


자신의 글을 공개하는 지는 사람마다, 작가님들 마다 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들과 자신의 글을 나누고 알리길 원하지만, 누군가는 가깝기 때문에 더 숨기고 싶어한다. 브런치를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라서 가족들이 알고 구독해주는 작가님이 있는가 하면 브런치를 하는 것도 알라지 않는 작가님들도 많다.


따지자면 나는 후자에 속한다. 부족한 글 솜씨라서 내 글을 여기저기 알리지도 않고 애초에 주변에 뜬금없이 '저 글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쓰는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는 사람도 내 주변에 없고. (혹시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또 모르겠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내가 브런치에 어떤 이름으로 글을 올리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두 번의 글쓰기 수업 때 참여자들과 공유하느라 오픈한 대여섯 명 정도가 전부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글쓰기를 계속하던  어느 날 브런치 알람이 떴다. 새로운 구독자가 떴는데, 별명이 너무 익숙했다. 동생이었다. 바로 동생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 뭐야, 이거 너야? 왜 구독했어? 취소해.

딱히 동생에게 알리려고 했던 건 아니고, 그냥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쓰고 있다고 몇 번 말을 건냈던 것 뿐인데, 동생은 내가 구독자 수 늘리고 싶어하는 눈치라고 생각해 찾아서 구독까지 누른거였다. 오래 쓰던 블로그와 같은 필명이라 금방 찾아냈다고. 


'구독, 좋아요, 알람신청까지~' 같은 말은 유튜버나 하는거다. 나는 동생이 내 글을 읽는다는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홧홧해졌다. 글쓰기는 가장 진솔한 내면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가장 그럴듯한 꾸밈의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른 구독 취소하고, 아예 브런치 앱도 삭제해버리라고 말했다. 동생은 귀찮아하면서도 순순히 구독취소를 누르고 브런치를 지웠다.


이 작은 소동이 지나고 몇 달이나 지났을까.   


동생이 브런치를 시작했다. 언제 작가신청을 하고 언제 글을 썼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글을 올리고 있었다. 남들은 칠전팔기도 불사한다는 브런치 작가에 단박에 통과된 것도 놀라운데 어느새 글을 5개나 올렸다. 하지만 읽고도 한 줄 댓글을 달지 않고 구독도 누르지 않았다. 왠지 아는 척을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동생의 맨얼굴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나하나 읽어본 동생의 글은 긴 한숨 같았고 아프게 내뱉는  담배연기 같았다. 담겨있는 내밀한 고백에 내 가슴이 시려왔다. 아마 글을 쓰며 시린 가슴을 덥히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글에는 그런 힘이 있다. 진작 글을 쓰라고 응원해주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아쉬워졌다.


삶의 신산함은 때로 사람을 어딘가로 끌고간다. 어디서 무엇과 어떻게 마주칠지 모르고 누구와 어떤 만남을 하게 될지 모른다. 동생은 글을 찾았고,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글로 만나는 동생을 어떻게 마주해야할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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