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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06. 2023

이별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엔니는 베트남에서 왔다. 엄마아빠가 베트남 사람이고 엔니의 국적도 베트남이다. 이름은 티엔니지만 간단하게 아이들은 엔니라고 부른다.


작년에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인삿말 정도 밖에 못해서 한 학년 낮춰 1학년으로 입급했다는데 1년 동안 부쩍 자라서 지금은 받아쓰기 10개 중 8개나 맞는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로 자랐다. 동생은 한글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엄마가 한국에서 재혼한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엔니 엄마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다. 그래도 담임의 안내에 따라 학급밴드에도 가입하고 알림장도 열심히 확인한다.  3월에 제일 마지막 까지 밴드 가입을 안하셔서 번 문자로 부탁드렸더니 문자로 문의를 해오셨다. 차근차근 가입하는 방법을 문자로 안내했더니 결국 '엔니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입에 성공하셨다. 그 날 저녁에 문자로 "우리 선생님, 고마워요. 우리 선생님 잘해요." 라고 보내셨다.


우리 선생님이라니, 어느 학부모가 나를 이처럼 다정하고 친근하게 불러줄까. 문자를 받고 눈물 흘릴 뻔했다. 어색한 한국어실력이라서 나온 말일테지만 나는 마냥 좋아서 여러 번 반복해 읽었더랬다.



웃는 얼굴이 에쁘고 선한 엔니, 큰소리내며 친구와 싸워본 적 없고,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걷는 10살아이.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우리 엔니, 나한테 색종이로 접은 꽃다발을 내밀고 가던 엔니, 직접 만든 카네이션에 꼬깃해진 사탕을 내밀던 엔니가, 이 주말에 베트남으로 돌아간다. 할머니와 함께.



월요일 아침, 언제나처럼 일찍 등교한 엔니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나 금요일까지 학교 오고 베트남 가요."


아, 갑작스런 이별 이야기에 나도 아이들도 당황했다. 엔니는 웃으며 친구들의 질문에 천천히 답을 하고 나는 엔니 아빠에게 문자를 드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단순히 이사하고 전학가는거라면 이렇게 아쉽지 않을텐데, 엔니가 베트남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내가 애달프고 서운해서 눈물이 절로 났다.


다음 날, 나도 모르게 엔니 아버지가 교무실에만 들러서 서류 및 관련 안내를 받고 가셨다. 교무부장님이 일부러 교실에 오셔서 내게 말을 전해주셨다.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으셔서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단지 아이 말을 바탕으로 추측하건데, 엄마는 한국에 남아서 돈 벌며 동생을 키우고 할머니랑 베트남에서 지낸다고 한다. 엄마와 헤어져 지낸다고 하니 아주 헤어지는 건지, 다시 한국에 오는지, 엄마도 베트남으로 가는지 아무것도 나는 모른다. 그저 마지막까지 '곱셈의 기초'를 가르치고 '이야기를 읽고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는 법'을 말해준다.


점심 먹고 나서 엔니를 위해 2학년 아가들하고 롤링페이퍼를 만들었다. 맞춤법이 엉망이라 외국인 친구에게 주려니 민망해지는 멘트들 천지지만 글자 하나하나마다 진심이 담겼다. 아이들 글을 하나씩 읽는데 주책맞게 또 눈물이 글썽인다. 내일 이 편지와 그림을 받고 엔니가 기뻐하면 좋겠다. 


친구들이 롤링페이퍼를 쓰는 동안 엔니에게는 우리가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그림을 하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엔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무언가 도화지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아이들이 엔니에게 다가가 자기 얼굴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엔니 눈이 곱게 휘어지고 도화지에는 친구들 이름과 얼굴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그렇게 5교시 내내 우리는 엔니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나는 엔니에게 많은 것을 주지 못했지만, 분명 친구들과는 훨씬훨씬 더 많은 것들을 주고 받았을거다. 친구들과 지낸 한 학기가 엔니에게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내일 엔니는 마지막으로 학교에 온다. 울지 말아야할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웃으면서 안아주고 잘 보내주고싶다. 이 마음은 분명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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