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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15. 2023

마법같은 일주일

다 가명이에요~

월요일 -

"선생님 저 어제 자다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울면서 잤어요."

울 다 잠든 적은 있지만 어떻게 하면 울면서 잘 수 있을까? 9살이라서 가능한 스킬일까? 나는 우는 것과 자는 것, 둘 다 해봤지만 동시에 못하는데.

어쨌든 '울다 잤어요' 라고 고쳐주지않은 나, 칭찬해.



화요일 -

"선생님, 성우가 제가 만지지 말랬는데 자꾸 제 물건 만져요!"

"그래, 성우한테 얘기해봤어? 아니야? 그럼 성우한테 먼저 직접 말해보자."

우리 반 아이들과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먼저 선생님에게 이르기 전에 내 기분을 표현해보기를 연습 중이다.

직접 말하는 걸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훈이도 그런 편이다. 말하는걸 어려워 해서 성우를 불러서 사실을 확인하고 훈이에게 성우가 훈이 물건을 허락없이 만졌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해보라고했다. 잠시 고개를 수그리고 고민하던 훈이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선생님, 이제는 괜찮아요."하고는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뭐가 괜찮은걸까? 상대가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라서 피한걸까, 아니면 내게 말한 순간 불편한 감정이 해소된 걸까. 더 깊이 얘기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성우에게 한 번 더 친구 마음 살피기에 대해 얘기하고 훈이에게는 자기 마음 표현하기를 말해본다. 이것도 훈련이다.

 


수요일 -

제일 먼저 등교한 씩씩한 연이. 커피 타고 오니 가방만 올려놓고 금새 사라져버리고 두 번째로 온 정이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연이는 어디 갔을까?" 했더니 정아가"1층에서 오는 친구들한테 안녕, 안녕, 하고 있어요."한다.

누가 오는지 궁금해서 교실밖으로 뛰쳐나가 오는 아이들마다 인사하는 아이의 마음이 맑고 고와서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목요일 -

아침에 교실 문을 열고 온 아이가 가방도 벗지 않고 내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000에 윤이 사진이 붙어있어요."

지난 번 학교 앞 무인상점에서 물건을 가져갔던 아이가 다른 곳에서도 물건을 가져갔다. 그래,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훔쳤다. 가게 사장님이 CCTV화면을 출력해서 출입문에 붙여놓은 걸 친구들이 봤다는거다. 아침에 수근수근 거리며 말하길래 바로 단속에 나섰다. 화면이 흐릿하니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고 얘기하고 조심스럽게 하루를 보냈다.

퇴근하고 바로 문제의 가게에 들렀다. 아. 누가봐도 윤이였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윤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쳐들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바로 윤이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상황을 알려드리자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에는 당황하는 말투다. 다른 아이들이 보기 전에 빨리 사장님께 연락해서 아이와 함께 해결하시고 가정에서도 엄하게 지도해주시라 말하고 끊었다. 하루종일 내린 비에 몸도 마음도 눅눅해졌다.



금요일 -

드디어 기다리던 방울토마토 수확날이다.

모둠별로 심은 방울토마토가 제법 열려서 한 개씩은 가져갈 수 있다. 그동안 열린 열매를 다른 아이들이 다 따가서 얼마나 속상했던가. 고추는 열린 흔적만 남고 열매는 보이지도 않는다. 전교 어린이들의 서리에도 살아남아 빨긋해진 아이들을 따본다. 갑자기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토마토 옆에서 예쁜 달팽이가 발견된 것. 더 난리 나기 전에 얼른 달팽이를 집어들었다.

"교실에서 키우자!"

토마토는 벌써 잊어버렸는지 아이들은 좋아라 흥분하며 이름부터 지어주자고 성화다. 들어가는 길에 유치원선생님께 부탁해서 텃밭에서 상추를 몇 장 뜯어왔다. 사탕통을 비우고 상추를 깔은 다음 달팽이를 넣어주었다. 이름은 투표로 '팽팽이'로 결정됐다. 쉬는 시간마다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달팽이가 정신없을 것 같다. 어떻든 내게 온 생명, 최선을 다해 키워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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