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배우나 음악가가 자신을 창작자라고 하는 데는 위화감이 없다. 무대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창작자라 자칭해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 단어를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글쟁이가 입에 담는 순간 미심쩍어진다. 문사, 작가, 소설가, 라이터. 바로 떠오르는 호칭만 해도 이 정도인데 굳이 창작자라고 불리고 싶어 하는 것은 어딘가에 열등감을 품고 있기 때문일까? 소설가라고 나서는 것이 그토록 부끄러운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스테리 소설집 [작가 형사 부스지마]에 수록된 세 번째 에피소드 '상을 받긴 했지만'에 등장하는 소설가 기리하라의 대사다. 신인상을 받고 난 후 다음 소설을 쓰기보다 영상과 음악으로 재창작되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소설가에게 뱉은 쓴소리다.
하필 어제 이 책을 읽었는데, 바로 브런치에서 크리에이터라고 새로운 이름을 작가들에게 붙여줬다. 크리에이터. 굳이.
물론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더더욱 크리에이터라는 이름과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제는 특정 컨텐츠를 만들면 누구나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시대다.
사실 소설 속에서 저 대사를 뱉은 인물은 낡은 문단의 경직성을 대표하며 독설을 서슴지 않다 살해된다. 그러니 브런치에서도 크리에이터를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으응? 이런 비약???)
어쨌거나 나는 이용자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브런치가 고맙고 서로를 작가라고 부르는 플랫폼 이용자들이 귀엽다. 그래서 이 플랫폼이 오래오래 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브런치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쓸 리가 없다. 이 모든게 다 함께 글을 쓰는 작가님 덕이다. 아기자기하게 글을 쓰며 살아가는 여러 작가님들을 보며 위로받고 격려받은 것 처럼 좋은 글을 더 적극적으로 응원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에 찬성한다. 다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소외되지 않는 방법을 더 고민하면 좋겠다. 누구나 한다는 대안없는 불평, 나도 한다.
말나온 김에 책 얘기를 좀 더 하자.
브런치에서도 활동하시는 이경 작가님 추천으로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하루만에 완독했다.
전직 형사이지 미스터리 작가인 부스지마가 출판산업계 인물이 얽힌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추리소설이다. 매끄럽고 유쾌하면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는 작가와 글쓰기에 관한 비틀린 지점들이 아프면서 재밌다. 내가 매저키스트인가 싶을 정도다. 읽다보면 도대체 이 세상에 작가, 독자, 편집자, 작가 지망생들은 제 정신인 인간이 없는건가 싶다. 이런 소설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그래도 다 읽고 나면, 주인공 처럼 우후,우후후후후후 하고 웃게 되는 매력넘치는 미스터리다. 더불어 재능 없는 자는 쓸 생각을 아예 말아야한다는 자괴감에 빠진다는 부작용이..............쿨럭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