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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ug 31. 2023

응, 내 얼굴

    거울을 보면 제일 먼저 보톡스를 맞아야하나 고민할 정도로 납작한 이마가 보이고, 그 밑으로 있으나 마나한 흐린 눈썹이 보인다. 거기에 쌍커풀 없는 눈. 여기까지만 훑어도 알 수 있다. 살면서 빈말로라도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젊음이 무기라는 이십대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름 매력적인 외모라고 항변하기도 했지만, 그건 스스로 예쁘지 않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이었다.


    코라도 오똑한고 하니 낮고 동그스름한 것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마늘코다.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한국적인 미인형의 코라 칭찬받았을지 모르지만 현대에 태어난 나는 낮은 콧대 때문에 어릴적 삼촌, 고모, 이모에게서 무지하게 코를 쥐어 뜯겼다. 조금이라도 콧대 높아지라면서 나를 볼 때마다 어른들이 엄지와 검지로 코를 잡아 당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나는 또 진짜 코가 높아질 줄 알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픈 것도 참았더랬다. 미련한 년.


   그나마 봐줄 만한 게 입술이었다. 대학 신입생 때 복학한 동아리 남자 선배가 내 동기 다섯을 앞에 두고 너는 어디가 예쁘고 너는 어디가 예쁘다고 평판을 해댔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놈아, 하고 쏘아 붙였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게 칭찬인줄 알았다. 눈이 예쁜 친구, 코가 예쁜 친구 다음에 나를 보더니, 3초 정도 정적 후에 '너는 입술이 예쁘네'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욕을 뱉어주자. 미친 놈아. 어쨌든 그 날 내 입술이 예쁜 다는 말을 처음 들어서 이후로 나는 내 입술이 예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씁쓸하다. 나이 들면서 입술 모양도 달라지고 발긋하던 색도 흐릿해져서 이제는 레드립스틱을 발라야 거기가 입술인 줄 알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봐줄만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 입술보단 내 입술이 더 예뻤다. 흠흠흠


   귀도 꽤 예쁘다. 어릴 때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가 귀를 파주시면서 귀밑머리를 넘겨주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꼭 귓볼을 만지시며 두툼하니 복스럽다얘기해주셨다. 엄마의 조심스런 손길과 귓가에 건네주는 얘기가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아이처럼 느껴지곤했다. 그러고보니 발도 칭찬을 받았다. 발등이 두둑하니 재물복이 있을거라면서 엄마가 발을 만져주실때도 역시나 행복했다. 분명 가난했던 집 최고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없이 살았지만 자식은 넉넉하길 바라는 엄마의 비원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발등이 아무리 두둑하고 귓볼이 예뻐더라도 재물하곤 아무 상관이 없고, 미모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걸 자라면서 깨달았지만(그래서 좀 서글프기도 하지만) 딸아이를 예뻐해준 엄마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다. 내가 어떤 모습이건 간에 예쁘다고 예쁘다고 토닥여줄 유일한 사람. 여기저기 안 예쁜 곳이 없다면 눈에서 꿀이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줄 단 한 사람, 우리 엄마. 주말엔 엄마를 보러 갈까.




 ps- 그 엄마마저 요즘에 나를 구박중이시다. 지금은 엄마를 만나도 예쁘다는 말 대신 살빼라는 잔소리만 잔뜩 듣는다. 갈수록 불어난 체중과 아랫배 때문이다. 부루투스에게 배반당한 시저의 심정이 이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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