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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24. 2023

살림을 안하면 돼요

어떻게 책을 읽으세요? 라는 질문에 -

<북모리>라는 앱에 읽은 책에 관한 간단한 기록을 남기고있다.

 

지난 모임에서 처음 참가하시는 분께  독서기록용 앱을 소개했다. 실제 활용 상태를 보여드리려고 저장된 내 독서달력을 보여드렸더니 '많이 읽으시네요'라고 감탄을 하셨다.


"저는 책읽을 시간이 없어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으셨어요?"


질문하신 분에게 내가 법륜스님도 아닌데 즉답을 드렸다.


"살림을 안하면 돼요."


삼일에 한 번 화장실 청소 하는 일을 일주일에 한 번으로 바꿔도 된다. 변기 세정제를 쓸 수 있는 경제력과 약간의 욕실 바닥 물때 쯤은 못 본척 넘어가는 대범함이 필수다.


저녁 먹고 바로바로 그릇을 치워놓지 않고 조금 천천히 치워도 된다. 역시나 자본의 힘이 있다면 식세기나 로봇청소기, 건조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요리도 잘 안하고 밑반찬은 반찬가게와 밀키트를 애용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 주에 한 번 있는 엄마 책모임 날에 중국집에서 배달하는 짜장면을 먹는다. 아니면 아빠가 시켜주는 피자를 먹던가. 아이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주말에는 하루에 두 끼만 먹인다. 늦은 아점과 이른 저녁. 밥하고 설거지할 시간에 브런치 글을 읽고 글을 쓴다.


엄마의 정성이 가득한 제철집밥 요리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그때그때 신선한 식재료로 해주는 건강한 요리에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는 엄마는 그렇게 하는게 맞다. 나는 그것보다 책 읽고 글 쓰는 행복이 더 큰 사람이라 그런거고,  그렇게 시간을 만들어 나한테 쏟아 부을 때 살아갈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사실은 잘 못 하는 핑계인것도 있다.)


다 장단점이 있다. 살림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대신, 나에 대한 욕심은 끌어안고 있는다. 양 손에 떡을 쥘 수 없고, 두마리 토끼를 쫒기 힘들면 과감히 포기해야한다. 그래야 하나라도 맛나게 먹을 수 있다. 냠냠.


현실적으로 많은 여자들이, 엄마들이, 주부들이 살림과 육아에 쫒겨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계발할 시간을 놓쳐버린다. 그저 조금 덜 깨끗하고 조금 덜 맛있어도 괜찮다고, 남편과의 가사분담에도 적극적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절대로 청소기를 돌리지 않는다. 우리 가정에서 청소기는  남편의 몫이다. 아무리 바닥이 지저분해도 팔 걷어부치고 내가 나서지 않는다. 청소기 돌릴 시간에 나는 읽어야할 책을 읽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고 쇼핑도 한다. 물론 혼술도 한다.


살림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아득히 먼 나라의 사치처럼 느껴졌다. 어딘가에 있다고 말로만 들었던 유니콘이나 아틀란티스 같은 것들. 어린 아이를 돌봐야하기 때문에 내 시간을 못 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내 시간 확보가 쉬워졌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지 않아도 되고, 열 나는 아이를 안고 황급히 병원으로 뛰어가지 않아도 되며, 먹이고 재우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내 시간을 잡았다. 그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지금껏 아이들을 키워낸 내가 대견하고,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 덕분에 이렇게 읽고 쓰며 소통하는 시간이 생겼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여러가지 맛의 간식들이 가득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가지고 있는 기분이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볼까, 글을 써볼까, 강의를 신청해볼까, 도서관에 다녀올까? 오로지 나를 위한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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