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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08. 2023

우산없이 비를 맞는 아이에게

 릴땐 갑자기 내리는 비가 싫었다. 특히 하교시간에 비가 오거나 수업 중간에 비가 오면 당장 집에 갈 걱정에 마음이 출렁거렸다. 혼자 비 맞으며 돌아가는 것도 싫지만 마중나온 엄마를 보며 웃는 친구들을 보는 것이 더 싫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다정하게 같이 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다. 자기 아이를 찾는 엄마들로 분주한 복도를 지나 혼자 걸어가는 게, 그렇게 비를 맞고 돌아가는 자신이 처량해서 싫었다. 그런 나를 딱하다는 듯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제일 싫었다. 세상이 온통 싫은 것으로 가득 차버리는 것도, 싫었다.

 

 김혼비 작가는 마중나온 사람이 없어 비를 마음대로 맞는 어린시절의 자신이 대단하고 멋져보였다고 썼다. 여리고 약한 아이가 아닌 그야말로 호연지기를 뽐내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산문집 [다정소감]에서 밝혔다. 읽으면서 신기했다. 저럴 수도 있구나.


  그녀처럼 전복적인 자존감을 지니지 못해서 그랬을까? 비오는 날, 마중나온 엄마품으로 뛰어드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고개 숙이고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비를 맞으며 걸어가곤했다. 그렇게 홀로 집에 가서 어찌했는가는 또 기억에 없다. 엄마에게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투정부려본 적도 없다. 아마 가정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거다.


 른이 된 지금은 소나기가 쏟아져도, 예상치 못한 비가 내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우산이 없더라도 근처 아무 편의점이라도 들어가서 사면 된다. 비가 거세면 아무 카페라도 들어가 잦아들때까지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다. 다행히 그 정도 돈은 번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아야 하는 어린 아이가 아아니서 갑자기 비가 온다고 서러워 눈가에 눈물이 맺힐일은 없는데도, 이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 비를 맞으며 차가워진 어깨를 웅크리고 걸었던 어린 날 기억이 난다. 괜찮다고, 비 좀 맞아도 된다고, 엄마가 데리러 오지 못해도 기죽을 거 없다고 얘기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지금이라도 이왕 젖은거 찰방거리며 물장난 치고 흠뻑 적신채로 마음껏 돌아다니다 집에 가도 된다고 어렸던 나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가 온다. 이제는 갑작스레 퇴근 시간에 비가 내리면 도로상황 걱정을 하지 비 맞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처량하게 보일 걱정도 하지 않는데, 내 속의 어린 아이는 가끔 쓸쓸해한다. 난데없이 내리는 비에 잠시 어렸던 나를 토닥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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