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Nov 06. 2023

오늘 치의 다정함

받아줘서 고마워

  우산을 쓰고 출근하는 날, 월요일 아침부터 쌀쌀한 바람에 떨어진 낙엽들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학교에 도착하니 유치원쪽 현관에 분홍색 유니콘 비옷을 입은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직 8시 15분 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이른 등교다.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어린이, 몇 학년이에요? 왜 여기 서 있어요?"

  "1학년이요. 선생님 기다려요."

   1학년 아이가 어쩌다 일찍 등교하게 되었나본데, 아직 선생님이 안 오셔서 교실 문이 잠겨있으니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어린이, 오늘 비가 와서 차가 막혀 선생님이 조금 늦나봐요. 선생님 따라 가서 같이 교실로 갈까요? 여기 있으면 추워요."

  분홍 우산을 들고 분홍 비옷을 입은 단발머리 여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함께 올라가 2층 아이의 교실 앞에 가보니 아직 복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둑했다. 아이가 혼자 그 앞에서 기다리기엔 무서울 것 같았다. 내 허리춤에 머리가 닿는 작은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어린이, 여기서 혼자 기다리지 말고, 선생님 교실에 가서 같이 기다릴래요? 선생님은 2학년 선생님이에요."

  마스크를 썼지만 잘 들리도록 분명히 대답하는 아이와 함께 한 층을 더 올라갔다. 자물쇠를 열고, 불을 켜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버튼 부터 눌렀다. 교내 메신저를 확인하니 아직 아이 담임선생님은 출근 전이시다. 

  "여기 언니 자리에 잠깐 앉아서 기다려요. 금방 오실거에요."


  곧 우리 반 아이들이 인사를 하며 교실로 들어섰다. 낯선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조금 놀라는 눈치다. 그래도 한 살 더 위에 언니라고 동생이 기다리고 있는거라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준다.

  

  다시 메신저를 확인하니 그새 'on'으로 바뀌어 있다.

  "어린이, 3반 선생님 오셨네. 이제 교실로 갈까요?"

 아이는 일어나서 자기 가방을 메고 계단으로 향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반으로 들어서는 아홉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유없는 친절, 이유없는 환대, 이유없는 다정함.

작은 아이 덕분에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오늘 몫을 다 한 기분이 들었다. 

손끝부터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2023년 11월 6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 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우산없이 비를 맞는 아이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