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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07. 2023

세상 하찮은 티키타카

아이들 학교 하기 전, 안내사항을 알림장에 쓰게 한다. 저학년이니 간단한 공지사항이나 안전교육, 학부모 전달사항 등 많아야 서너가지를 쓰는데 매일 확인하는게 만만찮다. 그래서 자주 쓰는 방법이 랜덤검사다. 어떤 날은 1모둠, 어떤 날은 2모둠, 이렇게 돌아가며 확인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심심하니까,  살짝 살짝 장난을 친다.


뽑기를 해서 '7'번이 나오면 7번만 검사하는 줄 알고 글씨 대충 쓰려던 아이들이 "7번 빼고 다 검사!"를 외치면 '아아아앙'하고 아쉬움(?)의 함성을 지르게하고, 다음날 '31'번이 뽑히면 31번이 있는 분단만 검사하는 식으로 아이들의 예측을 깨버린다. 


저학년이라 도장 받는 걸 뿌듯해 하고 좋아하기도 하면서 검사라고 하면 살짝 긴장하기도 하는 데 요렇게 놀아주면 좋아한다. 대개는 '선생님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나와서 검사!'라거나 '콧구멍이 두 개인 사람 검사', 길이재기를 배우고 나면 '키가 2미터 안되는 사람 검사' 이런 식이다. 그러면 이 깜찍한 아홉살 아이들은 한 손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자기는 하나밖에 없다고 우기거나, 까치발을 하고서 2미터가 넘는다고 주장(!)한다. 개중 줏대있는 아이들은 선생님 안 예쁘다고 끝까지 검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양치질 안하고 온 사람 검사!"

"어우 선생님, 누가 안하고 와요, 다 하지!"

"그냥 다 검사한다고 해요!"

라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치지만 나는 안다. 안하고도 부끄러워 했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는 양치질 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생기겠지.


검사하기 싫은 날도 있다. 많이 바쁘고 번잡스러운 날, 다 아는 내용, 중요한 알림사항이 없는 날, 그런 날은 이렇게 말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똥 안 싸본 사람만 검사!"

"말도 안돼요,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여기있지. 선생님은 한 번도 안 똥 안 싸고 100살까지 살았는데~"

"에이!!!!!"

그래도 검사 받겠다고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할 수 없다. 그냥 검사 받고 싶은 사람 다 나오라고 하는 수 밖에. 우르르르 몰려나오는 아이들.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오라고 할 때 어떤 남자 아이들은 자기는 멋있어서 검사 안받겠다고 당당히 말하기도 하고, 슬며시 내 옆에 와서는 내 귀에 대고 자기는 귀여운데 어떻게 하냐고 묻는 아이도 있다. 물론 그 아이들은 진심이다. 고학년에게서는 볼 수 없는 순수한 진심. 


이렇게 하다보면 아이들이나 나나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어서 조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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