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다음(www.daum.net)을 전혀 쓰지 않는다. 다음에 들어가는 경우는 딱 하나다. 브런치에 올린 글의 조회수가 갑자기 올라갈 때, 통계를 확인해보니 '기타'가 많이 잡힐 때다. 그럴때나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차 가끔 들어가보는 정도다. 메인 화면만 보는 정도지 로그인한다거나 접속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이번에 친정엄마와 김치에 관해 쓴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렸다. 그 덕에 다음에 들어갔고 모바일 다음 화면을 보다가 로그인 버튼이 눈에 들어와서, 정말 어쩌다, 그냥, 이유없이, 나도 모르게 눌러보았다. 아이디와 비번을 바꾼 적이 없으니 접속이 되어야 하는데, 안됐다. 카카오와 통합계정으로 설정한 후 로그인을 하라는 메세지가 뜬다. 이런, 그냥 나가버릴까, 귀찮아도 들어온 김에 해버릴까. 잠시 망설였다. 하필 컴퓨터 작업을 하던 게 있어서 화면이 켜진 상태였고, 그 김에 해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카카오 통합이라니, 그 옛날 다음이 한메일일 일때부터 썼는데. 새삼 그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조금의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감수하고 통합메일 변경을 했다. 로그인 화면에 오래전 사용했던 닉네임이 나왔다. 잠깐의 낯설음과 가벼운 그리움, 그리고 밀려오는 겸연쩍은 웃음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설명해주는 듯 했다. 그 뒤 메일함을 뒤져보니 정말 온통 광고와 스팸메일 투서이였다. 서버에 저장되었다 뿐이지,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한 폐가가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몇 번을 뒤지고 뒤져서 옛날, 20년 전의 메일들을 마주했다. 쓰린 첫사랑의 기억, 옛날 동호회 시절의 추억, 친구들과 나누던 낭만들까지 하나씩 추억이 되살아 났다. 동시에 흑역사도 부활해서 흑마법으로 다 태워버리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수천 건의 메일을 삭제하고 남기고 싶은 메일들만 따로 폴더를 분류에 넣었다. 정확히 재지는 않았지만 몇 시간은 족히 걸렸을거다. 기억이 가물가묵한 옛연인과의 흔적도 있고, 지금은 이미 끊긴 인연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대부분인데도 차마 지우지 못하고 담아뒀다. '역시 미련이 많은 성격인가보다' 하고 씁쓸히 웃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도 '그대로의 나'라서 그냥 두었다.
카페도 들어가보았다. 네이버로 옮기기 전까지는 다음 카페 여러 곳에서 열정적으로 커뮤니티 활동도 했었다. 삐그덕대며 스크롤을 내려 목록을 보니 한때 열심히 활동했던 카페 이름들이 보였다. '세상에 맞아, 나 이런데서도 활동했어. 어머, 여기도 가입했었어?' 새삼 놀라며 목록들을 훑어봤다. 놀랍게도 내가 운영자로 남아있는 카페도 있었다. 이미 폐쇄결정된 카페도 있고 아무도 활동하지 않는 텅빈 곳도 있었다. 뭐랄까,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글자 몇 개, 이미지 몇 개일 뿐인데도 지나간 내 세월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된 앨범을 꺼내 색바랜 사진을 보는 느낌. 이미 업종이 바뀐 오래 전에 즐겨찾던 맛집을 보는 느낌. 그런 비슷한 느낌들.
동시에 흘러간 지난 시간들, 젊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괜시리 가슴 한 켠이 아련해졌다. 무어 대단한 추억이겠냐마는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있었고, 청춘은 있었던 법이다. 그리고 빛났던 만큼 아픔도, 실수도 깊었었지. 이제는 이렇게 손가락하나로 클릭하며 넘기고 삭제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때의 내가.
생각해보니 나는 싸이월드도 다시 찾지 않았다. 지난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어서. 그런데 다음은 이렇게 카카오와 통합이라고 강제적으로도 한 번은 들어가게 한다. 덕분에 잠시 옛생각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휴지통에 옮긴 메일을 삭제하고 카페탈퇴 버튼을 연속적으로 눌렀다.
내가 삭제한 것은 메일일 뿐, 과거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과거의 나도 모두 같지만 다르다. 한 시절을 견디고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지금의 나를 견디고 미래의 나를 만들테다. 한 시절이 지나갔지만 화양연화를 읊어대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글을 쓰고 포털 다음에 들어가보니 카카오와 연동해놔서 그런지 자동으로 로그인이 되어있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