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빠, 개구리화 현상, 홍이삭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남자고 여자고 가리지 않고 어떤 한 포인트만 맞으면 금방 반해버린다. 쉽게 말해, 금사빠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을 것 같으면 스스로 마음을 접거나, 다른 상대를 찾거나, 눈을 돌려버린다. 상대에게 깊이 빠져드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늘 '라이트'한 팬질을 유지하며 절대 덕후가 되지 않으려한다. 비겁하더라도 그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내 본능이 알고있는 거다. 이 보호본능 덕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보내왔던가.
개구리화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심리학자가 동화 '개구리 왕자'에서 따와 만든 용어로, 내가 짝사랑하던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되면 외려 싫어지거나, 좋아하는 사람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마음이 식는 현상을 의미한다. (갑자기 개구리로 보여서 개구리화 현상이란다)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은데, 천상의 인물이 나따위를 좋아할 리 없어, 라고 현실 부정하거나 나를 좋아하다니 천상의 인물이 아니야, 라며 급격히 마음이 식는 경우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는 없지만 감정상태는 당연히 있다.
나는 개구리화 현상까지도 못갔다. 아예 짝사랑을 시도도 하지 않았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리 없어, 그러니 좋아해서 상처받지 말고 아예 시작하지를 말자.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려할 때 싹을 잘라버린다. 비겁하지만 그렇게 나를 지켜왔다. 대신 스크린과 미디어 속의 인물에게는 아주 쉽게 빠져든다. 특정 인물의 팬이 되는 게 아니라 이 사람도 좋아하고 저 사람도 좋아한다. 어제는 이 남자에게 반했다가 오늘은 저 남자에게 글린다. 심장이 지나치게 두근거리기 전까지. 마음이 커지려하면 재빨리 접어버린다. 덕통사고(교통사고처럼 불가항력적으로 인물에게 빠져드는 경우)는 최대한 피한다. 역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 반해있는 남자는 싱어게인3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가수 홍이삭이다. 안경을 써도 안 써도, 기타를 쳐도 안 쳐도, 웃어도 안 웃어도, 노래하는 모습도 말하는 모습도 그저 멋지다. 다른 참가자들 노래는 남편 무릎을 베고 누워서 듣다가 홍이삭이 무대에 등장하면 벌떡 일어나 척추를 곧추 세우고 티비속으로 빠져들것 처럼 응시하며 경청한다.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 건 기본이고 여기저기 노래 들어보라고 홍보도 한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 참가자인 그를 위해 온라인 투표를 하지는 않는다. 회원가입이 귀찮기도 하고 그러다 확 빠져버릴까봐 경계하는거다. 이렇게 말하지만 분명 결승 생방에서는 온 가족 핸드폰을 동원해 문자투표를 하고 있겠지. 그래도 너무 두근거리면 안된다. 다음 보석을 위해 내 심장을 남겨놔야한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에 관한 남녀 차이를 빵으로 비유한 탁월한 이야기가 있다. 남자는 빵을 구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을 준다. 그 사람이 떠나고 다음 사랑을 만나면 남은 빵의 반을 주고, 또 다른 사랑을 만나면 그 남은 빵의 반을 잘라 준다. 여자는? 매번 빵을 새로 굽는다. 그렇다, 나도 오늘 새 빵을 굽는다. 진정한 금사빠의 도리를 실천하는 '찐'금사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