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영 겨울 세일이라길래 퇴근 길 들렀다. 초등학생들에게는 다이소가 참새방앗간이고, 중고등학생들은 올리브 영에서 논다. 70% 세일이라 매장 안은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온 중고등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샘플을 발라보며 수다를 떠는 여자아이 무리 사이를 헤치고 50대 아줌마도 화장품을 골랐다. 이 나이에는 백화점에서 고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괜히 씁쓸했지만 꿋꿋하게 원하는 제품을 찾았다. 눈썹 그릴 거, 눈에 바르는거, 얼굴에 펴바를 것까지 골고루 바구니에 담았다. 할인폭이 커서 살까 말까 망설인 향수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내려놓고 대신 사춘기 아들 정수리 샴푸와 바디제품과 할인하는 간식도 여러 개 골랐다.
"9만ooo원입니다."
계산대에서 발랄한 톤으로 점원이 말했다. 뭐, 9만원? 내가 뭘 샀다고 이렇게 많이 나왔나. 황급히 바구니를 눈으로 훑으니 그 금액 나올만 하다. 세일이라고 마구 담았나보다. 딸 셋 친구는 올영 세일이 제일 무섭다 했다. 한 번 가면 30만원은 우습게 나온다고. 그러니 9만원이 많이 나온거는 아니겠지만 왠지 과소비한 느낌이었다. 카드를 내밀며 생각했다. '백화점에 가면 저 크림 하나도 9만원이 훌쩍 넘어가겠지. 아, 감사하다 올리브영이여.'
경기도서남부 두 개 시를 지나 서울까지가는 긴 노선의 버스를 탔다. 사우나 진동벨트를 허리에 두른건가 싶을 정도로 달리는 내내 발밑이 달달 떨리는 버스는 처음이었다. 급정거와 급출발 사이에서 승객들의 균형감각을 길러주는 속 싶은 버스기사님의 운전에 감탄하며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는데, 기사님 뒤 쪽에 붙은 메모가 보였다.
'할아버지할머니 미리 일어나지 마세요'
낡고 바랜 종이에는 할아버지할머니 조심하시라고 써있었다. 누가 붙였을까? 정겹고 또 귀엽다. 나도 서두르지말고 천천히 내려야지.
돌아가는 길에 같은 번호 버스에 타며 살펴봤는데 이번에는 안붙어있다. 다 붙여놓은건 아닌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