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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19. 2023

엄마의 밥도둑 3대장 VS 아들의 밥도둑 3대장

우리 나라 3대 도둑. 연정훈, 정지훈(비), 그리고 간장게장.


밥 한그릇 뚝딱하게 만든다는 무시무시한 간장게장 말고도, 내게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밥도둑들이 있다. 사실 모든 반찬이 밥도둑인건 아닐까 의심도 든다. 찬물에 밥 말아 멸치를 고추장에만 찍어도 한 그릇을 다 비울 수 있고, 남들은 밥경찰이라고 부르는 가지도 없어서 못 먹을 뿐,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 다 비울 수 있다.


미모와 재능과 돈은 없지만, 대신 식욕과 식탐과 밥맛이 있다.(자랑인가!) 아무리 아파도 밥은 챙겨 먹었고, 아무리 늦어도 마지막 한 숟가락을 포기하지 않았다. 입이 심심하면 조미김으로 밥을 싸서 한 접시 가득 쌓아놓고 간식으로 집어먹었다.


왠만해선 반찬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반찬, 조금 더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은 있다. 주로 맵고 짠 반찬들이다. 춥고 쌀쌀한 , 피곤을 이겨낼 입맛 돋구는 반찬이 필요하다. 갓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그릇에 푸고, 좋아하는 반찬들을 꺼냈다. 오늘은 오이지무침, 마늘쫑무침, 파김치다. 내 손맛 베인 반찬은 아니고, 반찬가게 사장님의 손맛과 친정엄마의 사랑이 들어간 반찬들이다. 쿰쿰하게 삭은 맛과 맵고 짠 양념 맛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뤘다. 여름에 집나간 입맛 돌아오게 하는데도 공이 크지만 겨울철 심심한 국물과도 궁합이 좋다.

헌데 아주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 나야 이 3대장이 있으면 몇 끼니라도 물리지 않고 먹겠지만, 이것만 내놓으면 파충류 아들들이 먹을리가 없다.


아들의 밥도둑은 무조건 고기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거기에 생선회. 두 아들이 살아온 10여년 동안 먹은 육류가 내가 50살 되도록 먹은 육류보다 많으면 많았지 덜하진 않을거다. 아들들이 좋아하는 고기가 없다면 하다못해 달걀후라이나 참치, 소세지라도 있어야 한다.


엄마의 3대장과 어울리는 고기라면 수육이나 보쌈이겠지만, 월요병 후유증이 남았으니 패스. 오늘은 그냥 에어프라이기에 돌리면 나오는 돈까스와 치킨텐더를 골랐다. 여기에 떡갈비까지 곁들였으면 완벽한 가공식품반찬 3대장이 되었겠지만, 양심상 하나는 줄였다. 그래도 치킨텐더는 양상추와 오이, 방울토마토를 곁들여 샐러드로 변주를 했다. 이러면 채소도 좀 먹겠지 싶어서.


이 정도는 구워줘야 먹을 반찬이 없어 못 먹는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돈까스집도 아닌데 여기에 음료수까지 추가한다. 알아서 냉장고에 있던 탄산을 하나 꺼내놓고는 자연스럽게 같이 먹는다. 밥 먹다 음료수라니 나는 상상도 못할 맛이지만, 소맥과 삼겹살 먹는 기분을 생각하면 이해못할 일도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들 역시도 나는 다 잘 먹는다. 아들의 밥도둑은 엄마에게도 밥도둑이라서, 좋은 게 좋은거라고 같이 먹다보니 우리집 식탁위를 점령하는 횟수로는 아들의 3대장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래도 아들들이 엄마의 3대장도 좀 맛나게 먹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입맛이야 사람마다 다른 '개취'의 영역이지만, 이건 그저 소박한 '공감'의 영역이다. 내가 맛있어하는 반찬들을 아들들도 좋아하면 좋겠다는. 이상하고 맛없고 냄새나는 음식이 아니라, 독특하고 중독되고 오래가는 맛이라는 걸 아이들도 알아주면 좋겠다.


그 바람을 이루려면 내가 맛깔스럽게, 자주, 다양한 한식반찬들을 만들어야할텐데 그게 너무너무너어어무 힘들다. 특히 장아찌 같은 요리들은 제철에 미리미리 준비해서 만들어 놔야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라 내게는 너무 어려워서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그래도 언젠가는 식탁 위의 대 화합, 모자 밥도둑 3대장으로 감격스런 통합이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언젠가는 이란 말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뜻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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